올해 86세인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가 새로운 연구서를 냈다. 원고지 약 5000장 분량의 ‘한국 언론 연대기’(민속원)다. 한국 언론사 연구의 권위자로 지금까지 저서를 30여 권 냈던 정 교수는 이번에는 한국 언론의 역사를 날짜별로 세세하게 정리했다.
“작은 사건부터 기록해 언론사의 큰 틀을 개관하는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썼다”고 정 교수는 말했다. 조선 시대 조정의 소식을 전했던 신문의 원조인 조보(朝報), 최초의 근대 신문인 1883년 한성순보의 창간, 총독부의 엄혹한 통제 속에서 발행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광복 이후의 파란만장한 현대사를 거쳐 2020년대 코로나 사태와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의 부상에 이르는 한국 언론의 역사가 담겼다. 일반적 통사(通史)에는 실리기 어려운 사건 하나하나를 일일이 놓치지 않고 따라잡는 방식을 취했다.
“연도별로 사건을 기록하는 편년체(編年體)를 근간으로 했어요. 하지만 하나의 큰 사건이 시작되면 그 경과와 흐름을 한 번에 종합해서 썼습니다. 역사를 주제별로 쓰는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를 가미한 셈이죠.” 예를 들어 2001년 1월 시작된 중앙 언론사 대규모 세무 조사, 2008년 4월 시작된 광우병 보도 파동이나 2012년 1월 대규모 방송 노조 파업 같은 경우 처음 나온 시점을 기록한 뒤, 그 항목에서 끈질기게 그 추이와 결과를 추적해 모두 수록했다. 이를 통해 인터넷 백과사전 같은 곳에서 개별 항목을 찾아볼 때는 파악하기 어려운 전체적인 맥락이 드러난다.
한국 언론사의 초기 상황을 다룬 앞부분부터 흥미롭다. 조보의 발행은 기록상으로 조선 중종 때인 1508년이 처음이지만, 정황상 고려 명종(재위 1170~1197) 때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오늘날의 ‘기자’에 해당하는 명칭은 대한제국 이전까지는 없었고, 그 대신 ‘채방인’ ‘탐보인’ ‘기재원’ 등으로 불렸다. 최초로 ‘기자’란 명칭으로 불린 인물은 1898년 제국신문에서 활동한 이승만이었다.
전체 분량의 절반 정도가 2000년 이후에 할애됐다. 정 교수는 “최근으로 올수록 매체가 늘어나고 파업이나 소송이 많아져 대단히 복잡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소송 사건은 2·3심은 보도돼도 1심 내용을 잘 찾을 수 없거나 반대인 경우도 많아 가장 쓰기 힘든 부분이었다고도 했다.
정 교수는 “한국 언론사(史)는 언론만의 역사가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의 핵심을 꿰뚫는 분야”라고 했다. 독립운동사와 정치사·문화사가 그곳에 담겨 있거나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이광수나 선우휘 같은 인물에게서 보듯 20세기에 언론과 문학은 분리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었다.
한국 언론사 전체에 대한 소회를 묻자 그는 “언론이 역사를 끌어왔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언론은 늘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었다”며 “굴곡진 시대마다 힘든 고비를 겪으면서 권력과 싸웠고, 결국 근대화와 민주화, 산업화에 이바지했다”고 말했다.
책을 쓰기 위해 숱한 자료의 깨알 같은 글씨들을 계속 보느라 좋지 않았던 눈이 더 나빠져 내년에 병원 수술을 예약해 둔 상태다. 하지만 그는 “이 작업이 평생의 끝은 아니다”라고 했다. 앞으로 민주화 유공 언론인 명단을 밝히는 책과, ‘한국 언론 통사’의 결정판을 내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