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된 전쟁, 만들어진 중국' 저자 목포대학교 한담 교수/김영근 기자

중국은 6·25전쟁을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이라 부른다. ‘미국에 저항해 조선(북한)을 도운 전쟁’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 ‘항미원조’에 대한 중국 내 선전과 회고가 시기마다 정치적인 목적에 따라 중국의 국민 단합과 국가적 정체성을 이루는 데 이용됐음을 분석한 연구가 나왔다. ‘항미원조’란 중국 국경 밖에서 이뤄진 ‘상상의 전쟁’으로서 시기별로 필요에 따라 소환됐다는 것이다.

중문학 전공인 한담(42) 목포대 교수는 베이징대 유학 시절 중국의 ‘항미원조’ 서사를 접하고 놀랐다. 도서관에 쌓인 자료가 엄청나게 많았다. “우리는 통 모르고 있던 세계가 그곳에 있었어요.” 박사 학위 논문을 그 주제로 쓴 뒤에도 관심을 놓지 않았고, 최근 연구서 ‘기억된 전쟁, 만들어진 중국: 항미원조의 문화정치학’(나름북스)을 냈다.

전남 무안의 목포대 인문대 연구실에서 한 교수를 만났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신생 중화인민공화국은 내부의 단합에 ‘항미원조’ 전쟁을 활용했다. 1949년 10월 수립된 중공 정부가 꼭 1년 만에 6·25 전쟁에 개입했는데, 이것은 미국이라는 ‘제국주의 국가’와 맞서 싸운 전쟁으로 해석됐다.

1951년 제작된 중국의 항미원조(중국의 6.25 전쟁 참전) 선전 포스터. /한담 교수 제공

중국의 3대 건국 전쟁은 ‘항일전쟁’ ‘해방전쟁(국공내전)’ ‘항미원조 전쟁’이며, 1840년 아편전쟁으로 중국이 제국주의에 침탈당한 지 100여 년 만에 드디어 제국주의의 최강국과 맞서 싸워 ‘이긴’ 전쟁이라고 선전된 것이다. ‘항미원조’ 서사는 문학·영화·연극을 통해 확산돼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고, 사회주의 세계관과 계급 질서를 대중의 일상에 스며들게 했다.

1960년대 중·소 갈등과 중국 국내 정치의 불안 등으로 사회주의 체제가 위기를 겪자 ‘항미원조’는 다시 소환돼 AALA(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와 연대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이어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자 ‘항미원조’는 ‘세계 사회주의 혁명의 선봉’으로 재해석됐다.

그래픽=정인성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항미원조의 주체’, 즉 ‘6·25 당시 중공군의 정체’는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게 계속 변화했다. ① 1950년대엔 ‘중국 혁명의 주체’로 ‘농민’이 설정됐는데 ② 1960년대엔 ‘프롤레타리아 전사’가 됐다가 ③ 문혁 직전 마오쩌둥이 후계자 양성을 강조하자 이후엔 ‘사회주의 후계자’로 둔갑한 것이다.

1950년대만 해도 중국의 과거 천하주의 사상을 혁명 버전으로 개편한 듯, 북한 사람은 노인과 여성만 등장해 ‘사회주의 (큰형님인) 중국이 조선을 지키고 보듬어 준다’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1960년대 이후엔 긍정적인 북한 측 남성도 등장한다.

실제 역사와 무관하게 미국은 ‘과거 일본 제국주의와 연대해 중국을 재침공하려는 악의 무리’로 폄훼됐고, 남조선(한국)은 ‘미국의 하수인’ 정도로 그려졌다. 전쟁 당시 상당수 중국인이 한국인을 ‘가오리방즈(高麗棒子)’라는 멸칭으로 비하하며 북한 돕는 것을 꺼리자, 중국 정부는 “가오리방즈는 북조선이 아니라 미국의 하수인이자 장제스 정부 같은 자들인 남조선”이라고 홍보하며 대놓고 혐한(嫌韓)을 조장했다. 그렇게 형성된 혐한의 정서가 재생산되며 이후 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중국의 항미원조(중국의 6.25 전쟁 참전)을 미화한 2021년 상영한 중국 영화 '장진호' 포스터

냉전 해체와 개혁 개방 이후 30~40년 동안 잠잠했던 ‘항미원조’ 서사는 시진핑 시대 미·중 패권 경쟁이 일어나며 재소환됐다. 이번엔 대규모 자본과 최신 기법이 투입된 블록버스터 영화 ‘장진호’(2021)와 ‘저격수’(2022) 등이 나왔고, 한국을 제외한 세계 각국에서 개봉됐다. ‘중국의 사회주의 전사가 미국을 이긴다’는 과거의 주제가 되살아난 이 영화들의 연출진에는 한국에도 친숙한 천카이거(‘패왕별희’ 감독), 쉬커(‘영웅본색’ ‘천녀유혼’ ‘황비홍’ 제작자), 장이머우(‘붉은 수수밭’ 감독) 등이 동원됐다.

한담 교수는 “참전국 모두에 비극적인 역사이자 기억인 전쟁을 지금 와서 정치적인 목적 때문에 ‘승전의 역사’로 재해석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라고 했다. 중국인들의 집단 기억 속에 도사린 ‘항미원조’를 다시 꺼내는 일은 위험한 애국주의로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