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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베스트극장: 형님이 돌아왔다'에서 거지로 분장한 배우 손현주.

저는 2주에 한번 조선일보 ‘신문은 선생님’ 면에 ‘뉴스 속의 한국사’를 쓰고 있습니다. 얼마 전 ‘효종의 북벌과 외국인’ 편을 쓸 때였습니다. 1653년(효종 4년) 제주도에 표착한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의 배 스페르베르 호에 30만 냥에 달하는 무역품이 실려 있었다는 내용이 기사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때 ‘신문은 선생님’ 지면을 담당하던 사회정책부 최원국 기자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선배, 30만 냥을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요?”

“글쎄, 그걸 환산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일텐데…”

“그래도 대략 얼마쯤 된다는 게 나오지 않을까요?”

듣고 보니 그것도 그럴 만했습니다. 도대체 조선시대의 화폐 단위 ‘냥(兩)’은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닌 것이었을까요? 일단 예전의 1냥이 현재의 1원은 물론 1만원보다도 훨씬 가치가 큰 것은 분명했습니다.

흥선대원군의 사진.

어린 시절 소년중앙에서 본, 옛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린 이두호 단편만화가 하나 있었습니다. 고종 초기, 강원도 홍천에 사는 한 가난하고 순박한 총각이 오래 묵은 산삼 하나를 찾아냅니다. 그걸 그냥 빼앗다시피 한 고을 사또가 흥선대원군에게 바치는데, 산삼을 들고 한양으로 올라가던 사또의 부하가 도중에 사고를 당하고 마침 그 장소에서 그걸 전해받은 사람이 원래 산삼을 찾은 그 총각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한양 운현궁에 다다른 총각은 대원군 앞에서 사또의 편지와 산삼을 바치는데 대원군은 ‘왜 하필 저런 녀석한테 산삼을 들려 보냈지?’라며 의심하고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총각더러 밖에 나갔다 오라고 합니다.

“옛다, 한냥을 줄 테니 어디서 술 한잔 마시고 오너라.”

이야기는 결국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대원군이 사또에게 벌을 내리고 총각에게 벼슬을 준다는 훈훈한 결말로 이어지는데, 여기서 어린 저는 무척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총각이 밖에 나가 술을 마신다면 보통 한양에 사는 친구를 찾거나 지나가는 비슷한 또래 청년 아무나 붙잡고 같이 술을 마셨을텐데, 성인 남자 두 명이서 술과 안주를 시킬 수 있을 만한 금액이 한냥이라고?

‘한냥이 도대체 얼마란 말인가?’

조선시대 대표적 화폐인 상평통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어른들이나 학교 선생님께 여쭤봐도 도무지 시원한 답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남는 얘기가 또 있었습니다. 19세기 초야의 시인으로서 익살 넘치는 숱한 일화와 설화를 남긴 정수동(1808~1858)의 이야기입니다.

어느날 정수동의 집 앞에 꿀 장수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꿀 사세요 꿀이오”란 말을 들은 정수동의 어린 아들이 꿀이 먹고 싶다고 졸라댔습니다. 하지만 당시 꿀값은 꽤 비쌌고 가난한 정수동은 쉽게 꿀을 살 수 없었죠. 정수동은 순간 꾀를 내 꿀 장수를 부릅니다. “여보시오, 꿀 한 사발만 주시오.” 당시엔 지금처럼 포장 판매를 할 리가 없었고 꿀 장수는 병에 담은 꿀을 정수동이 부엌에서 꺼내 온 사발에 따라 줬습니다.

“얼마요?”

“한냥입니다.”

“한냥? 아이고 너무 비싸요! 도로 물러 주세요.”

꿀 장수는 투덜거리면서 사발에 따랐던 꿀을 다시 자기 병에 부어 담았는데, 그러는 과정에서 사발에 남은 잔여물이 아이 한 명 먹을 만큼은 됐다고 합니다. 여기서도 이런 의문이 남았습니다.

‘도대체 한냥이 얼마인데 꿀값이 비싸다고 하는 것일까?’

그 오랜 의문이 최원국 기자의 질문을 듣고 다시 생각이 났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얼마 전 조선시대사 전공인 신병주 건국대 교수가 조선 화폐 이야기를 쓰면서 이런 분석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1냥의 현재적 가치를 알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당시나 지금이나 똑같이 쓰이는 물품을 통해 비교해 보는 일일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상정가라고 해서 국가에서 정한 공식적인 물품 가격이 있는데 쌀 1섬은 5냥이었다. 조선시대의 쌀 1섬은 지금의 쌀 144㎏ 정도가 된다.’

농산물유통정보(kamis.or.kr)에서 찾아보니 5월 24일 기준 쌀 20㎏ 소매가는 평균 5만1464원이었습니다.

농산물유통정보 사이트(www.kamis.or.kr)의 최근 쌀 소매가 현황.

그렇다면 1섬(144㎏)은 약 37만원입니다. 이것이 조선시대 5냥에 해당하는 금액이라고 보면, 1냥은 약 7만4000원이 됩니다.

아하, 7만4000원! 성인 남자 두 명이 술과 안주를 시켜 먹을 수 있는 금액이자, 꿀 한 사발로는 너무나 비쌌던 금액이 바로 1냥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앞서 나온, 네덜란드 배에 실려 있던 무역품의 가치 30만 냥은 약 222억원에 해당하는 것이었다고 봐야 하겠죠. 아주 정확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현재 가치 약 200억원대’로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1냥의 가치를 이 정도 잡아내자 많은 의문이 풀리게 됐습니다. ‘친구에게서 백냥을 꿨다’고 할 때 100냥은 740만원이고, ‘거금 천냥’이라고 할 때 1000냥은 7400만원이 되는 것입니다.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에서 허생은 1만냥을 빌려 100만냥을 버는데, 처음 대출받은 돈은 7억4000만원이고, 나중에 벌어들인 돈은 모두 740억원이 됩니다. 당시 조선 전체 통화량이 500만냥이었다는 말도 있는데, 이것은 약 3700억원에 해당합니다.

더 낮은 단위를 보면 1냥은 10전이고, 1전은 10푼입니다. 1냥은 100푼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1푼은 약 740원이 됩니다.

따라서 걸인이 ‘한푼 줍쇼’라고 할 때의 ‘한푼’은 740원이 되는 셈입니다.

우리가 지하철 같은 곳에서 걸인에게 적선을 할 때, 500원 동전을 하나 주면 스스로 ‘이건 좀 적은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렇다고 1000원 지폐 한 장을 주려고 하면 ‘이건 너무 많지 않은가’란 느낌에 당황하기도 하죠.

이 감각이 어느 정도 맞았던 겁니다.

그럼 ‘1회 동냥의 적정가’는 740원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좀더 활용을 넓혀 보겠습니다.

‘한푼 두푼 모은다’→‘740원 1480원 모은다.’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어림 370원어치도 없다.’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말 한 마디로 7400만원 빚을 갚는다.’

‘서푼짜리 오페라’(브레히트 희곡의 한국어 제목)→‘2200원짜리 오페라.’

‘한푼 없는 건달이 요릿집이 무어냐’→‘740원 없는 건달이 요릿집이 무어냐.’(근데 740원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빈대떡을 부쳐먹지? 이 경우엔 그냥 요릿집에 갈 형편이 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봐야 하겠습니다)

‘남의 돈 천냥이 내 돈 한푼만 못하다’→‘남의 돈 7400만원이 내 돈 740원만 못하다.’

...뭐, 이렇게 써놓긴 했어도 사실 이것이 꼭 정확하게 들어맞지야 않겠습니다만, 대략의 가치를 짐작하는 데는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18세기 학자 황윤석의 ‘이재난고’에는 머슴의 월급이 7냥 정도였다고 기록됐습니다. 대략 51만8000원 정도인 셈이죠. 조선시대 노비는 현재 최저임금(월 201만원) 4분의 1 수준의 저임금으로 일했던 것입니다. 지금의 최저임금 월 201만원이 주 근로시간 48시간(하루 8시간, 주5일, 주휴시간 8시간 포함) 기준임을 감안하면 더욱 열악한 조건이었습니다. 걸인이 하루에 24푼(1만7760원)씩 모은다면, 그러니까 낮 8시간 동안 20분에 한번씩 동냥에 성공한다면, 30일 동안 7냥 2전(53만2800원)이 되니 이론적으로는 노비의 수입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구조였습니다.

▶'유석재의 돌발史전’은

역사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입니다. 뉴스의 홍수 속에서 한 줄기 역사의 단면이 드러나는 지점을 잡아 설명해드립니다. 매주 금요일 새벽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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