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밭은 다 소작을 주고 농사 짓지 마소. 내 철릭(조선시대 무관이 입던 옷) 보내소.” “분(粉·화장품)과 바늘 여섯을 사서 보내네. 집에도 다녀가지 못하니 이런 민망한 일이 어디에 있을까. 울고 가네. 어머니와 아기를 모시고 잘 계시오.” “(상관인) 장수가 자기 혼자만 집에 가고 나는 못 가게 해서 다녀가지 못하네. ”
조선 전기 성종·연산군 시절인 1490년대, 멀리 함경도에서 복무하고 있던 군관이 아내에게 보낸 한글 편지<사진>엔 가족을 그리워하는 절절한 정이 서려 있었다. 군관 나신걸(1461~1524)이 아내인 신창 맹씨에게 보낸 편지 2장은 2011년 대전 유성구 금고동 신창 맹씨의 무덤 속 시신의 머리맡에서 여러 번 접힌 상태로 발견됐다. 남편의 편지를 평생 간직하다 무덤에 함께 묻은 것이었다. 현존하는 한글 편지 중 가장 오래된 자료다.
문화재청은 29일 ‘나신걸 한글 편지’를 ‘창녕 관룡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서울 청룡사 비로자나불 삼신괘불도’와 함께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나신걸 편지는 1446년 훈민정음이 반포된 뒤 불과 4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한글이 백성에게 널리 보급된 실상을 알려주는 학술적·역사적 의의를 인정받았다. 한글이 여성 중심의 글이었다는 통념과는 달리 남성도 조선 전기부터 익숙하게 사용한 문자였음이 확인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