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서울 YWCA 대강당에서 열린 고당 조만식 선생 순국 72주년 추모식에서 참석자들이 테너 임대범이 부르는 ‘선구자’를 경청하고 있다. /장련성 기자

“고당(古堂) 조만식(曺晩植·1883~1950) 선생님은 일제에 비폭력·불복종 운동으로 저항했고, ‘고향을 묻지 말자’며 온 겨레가 하나가 되길 간절히 원했으며, 해방 후 자유민주주의의 길을 지키다 희생당하셨습니다.”

18일 오후 서울 YWCA 대강당에서 열린 조만식 선생의 순국 72주기 추모식. 이우열 고당조만식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이 개회사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이 이사장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고당과 같은 애국 선열의 희생 위에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조만식 선생의 이날 추모식은 2019년 이후 3년 만에 열린 행사다. 2020년과 2021년에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행사가 열리지 못했다. 이승우 서울지방보훈청장, 송삼용 하늘양식교회 담임목사, 조연흥 전 방일영문화재단 이사장, 박성범 전 국회의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화환을 보냈다. 18일은 조만식 선생이 별세한 날이다.

권용우 단국대 명예교수는 추모 강연 ‘북한 동포와 생사를 같이한 고당의 생애’에서 “고당 선생은 월남해 자유를 누리면서 행복한 생활을 영위할 길이 있었지만 ‘북한 동포를 두고 혼자 월남할 수 없다’는 신념 때문에 연금된 채 고난의 길을 걸었다”며 “우리 민족에게 보내는 참으로 고귀한 교훈이었다”고 했다.

평남 강서에서 태어난 조만식 선생은 오산학교 교장을 지내며 인재 양성과 민족의식 고취에 힘썼다. 1919년 평양 독립만세운동 조직 책임자로 활동하다 10개월 옥고를 치렀다. 물산장려운동과 신간회 운동을 이끌었고, 조선일보 사장을 지내며 민족 언론 창달에 기여했다. 광복 후에는 평양에 남아 소련의 회유를 거부하고 신탁통치 반대 운동을 펼치다가 공산 정권에 의해 연금됐다. 6·25 전쟁 중인 1950년 10월 18일 별세했다.

이승우 청장은 추모사에서 “고당 선생은 일제 치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민족의 앞길을 밝히는 희망의 등불과도 같은 분이었고, 어려운 시기 민족 통합의 정신적 지주였다”며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민족 지도자로서의 사명감과 자유를 위한 신념을 잃지 않았음을 되새겨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