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민주화를 이뤘다는 훈장을 단 뒤 1991년 5월 투쟁의 패배를 계기로 제도권에 진출하기 시작했고, 이후 상승 가도를 달려 정치·경제 권력을 독점하다시피 했으며, 이제 자산 증식과 계층 세습을 통해 다음 세대를 희생시키고 있다.’

이른바 ’86세대'의 변신 과정에 대한 최근 학계의 주장을 종합하면 이런 문장이 된다. 과거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주축이었으나 현재는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 잡아 세대교체 대상으로 떠오른 ’80년대 학번, 60년대생'들은 젊은 세대에게 ‘꼰(대)86’으로까지 불리고 있다.

86세대가 젊은 시절 겪었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1987년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 정국이었던 ’1991년 5월 투쟁'이었다는 분석이 있다. 명지대생 강경대가 시위 도중 경찰의 진압으로 사망한 이후 연쇄적 분신과 시위가 일어났으나, ‘유서 대필 의혹 사건’과 ‘총리 계란 투척 사건’을 계기로 두 달 만에 잦아들었다. 그 자신이 86세대 막내뻘인 정치학자로서 최근 ‘대중과 폭력: 1991년 5월의 기억’ 개정판을 낸 김정한(51) 서강대 HK연구교수는 “계속되는 분신은 대중에게 공포를 불러일으켰고, 이제 대중은 이 통제 불가능한 상황을 다시 통제 가능한 상황으로 되돌리고자 했다”며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이 실패의 큰 원인이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기나긴 비(非)혁명의 시대'가 이어지면서 ‘5월 투쟁’은 망각됐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1987년) 6월 항쟁은 그 주역이라는 이른바 86세대가 제도 정치에서 입신양명할수록 그들과 함께 더욱 신화화되고 5월 투쟁은 사실상 잊혔다”고 지적했다. 또 “그 패배의 일면에는 1980년대 운동 문화에 내재해 있던 군사적·위계적·엘리트적·남성 중심의 한계들도 존재했고, 이는 1980년대를 어떻게 비판적으로 극복·계승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남겼다”고 했다.

이후 제도권 내에 들어선 86세대는 IMF 외환 위기의 칼날을 비켜 가고 산업화 세대의 빈자리를 채우며 ‘출세’에 성공했다는 분석이 있다. ‘불평등의 세대’에 이어 ‘쌀 재난 국가: 한국인은 어떻게 불평등해졌는가’를 쓴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조직화의 경험과 네트워크가 이 세대의 최대 자산인데, (젊은 시절의) 저항 네트워크가 권력을 확장하고 유지하기 위한 이익 네트워크로 전환했다”고 분석했다. 전통적 벼농사 체제의 위계 구조가 그대로 남은 현대 기업 조직의 연공 문화는 86세대가 권력을 독점하는 데 오히려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젊은 세대의 눈에 비친 86세대는 명분과 실체가 어긋난 채 지속적 훈육의 권리를 놓지 않는 주류 세력이다. “대한민국 상위 1퍼센트를 비난할 때는 급진적이고 사회적인 이념을 운위하지만, 사실은 자신들의 자산 증식과 계층 세습에 골몰한다”(임명묵 ‘K를 생각한다’) “‘중립 기어 박고 보자(어떤 논쟁이 벌어졌을 때 한쪽 입장에 치우치지 말자는 의미)’는 2030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어려운 세대”(박원익·조윤호 ‘공정하지 않다’)라는 비판은 기득권 86세대의 자기 분열적 모습을 과녁으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