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보고’ ‘전략 급선회’ ‘초단기 노동자’ ‘책 꾸밈’ ‘탈성별 배역’. 지난 1월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내놓은 ‘다듬은 말’(옛 순화어)들로, 각각 ‘백 브리핑(back briefing)’ ‘피버팅(pivoting)’ ‘기그 워커(gig worker)’ ‘북 아트(book art)’ ‘젠더 프리 캐스팅(gender free casting)’이란 외래어의 대체어다.
네이버 뉴스를 검색한 결과, 이 용어들은 발표한 지 2개월이 지났지만 ‘대체어로 지정됐다’는 뉴스 말고는 기사에서 사용된 적이 없다. 1월 18일 ‘트래블 버블(travel bubble)’을 다듬은 ‘비격리 여행 권역’이 몇 차례 병기됐을 뿐이다. 문체부는 매주 월요일 다듬은 말 3~4개를 발표하고 있는데, 29일에도 ‘실버 서퍼(silver surfer)’를 ‘디지털 친화 어르신’, ‘리클라이너(recliner)’를 ‘각도 조절 푹신 의자’로 다듬었다고 했으나 얼마나 쓰일지는 미지수다.
어려운 외래어를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로 바꾸겠다는 취지지만, 원어의 함축적인 맛을 살리지 못하고 종종 다른 의미의 용어를 만들어내며 오히려 우리말 대체어가 더 길고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덧보고’는 ‘백 브리핑’의 ‘비공식적’이란 뜻이 잘 드러나지 않고, ‘책 꾸밈’에서는 ‘북 아트’의 ‘예술’이란 의미가 사라졌다는 얘기다.
일부 네티즌은 뉴스 댓글에서 “너희 편하자고 이상한 용어를 만들지 말아라” “듣보잡(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것) 용어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소개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인다. 고 황현산 문학평론가는 “국어원은 아무도 쓰지 않을 말을 잘도 만들어낸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국립국어원은 2004년부터 2019년까지 ‘순화어’ 1만8000개를 내놓았다. ‘뽁뽁이(에어캡)’ 같은 일부 성공 사례도 있었으나, ‘늘찬배달(퀵서비스)’ ‘어른왕자(키덜트)’ ‘똑똑전화(스마트폰)’ ‘누리터쪽그림(웹툰)’ 등은 무리라는 비판을 받았다. ‘쌈지무선망(블루투스)’처럼 문체부 심의를 거쳐 순화어가 취소되는 사례도 있었다.
지난해부터는 국어·언론·정보통신·통번역·경제·교육 관련 인사들로 구성된 ‘새말모임’을 만들어 용어를 선정하고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수용도 조사를 진행해 ‘다듬은 말’을 내놓고 있다. 지금까지 170여개를 발표했지만 큰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작년과 올해 ‘다듬은 말’을 위한 홍보 예산은 모두 39억7000만원이다. 조규익 숭실대 국문과 교수는 “모든 외래 신조어를 우리말로 바꾸겠다는 것은 오히려 세계화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라며 “외래어라도 그 생존 여부는 언어 대중의 선택에 맡기는 쪽이 바람직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