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은 은둔(隱遁)의 잠재성과 가능성이 새롭게 인정되는 해가 될 것입니다.”
연구실 문을 두드리자 책장들 사이 미로처럼 난 공간으로 수염을 깎지 않은 김홍중(50)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걸어나왔다. 그는 “코로나 사태 이후의 은둔이란 단순한 개인주의가 아니라 ‘자발적 고독과 침잠’을 선택하고, 은둔형 외톨이가 아니라 거리를 두고 ‘다른 방식의 연결’을 희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최근 낸 단행본 ‘은둔기계’(문학동네)에서 “은둔을 삶에 지친 사람의 고상한 판타지로 보지 말고 하나의 세계관, 감수성, 삶의 형식으로 바라볼 것”이라고 했다.
독일 철학자 발터 베냐민처럼 책을 단상들의 모음처럼 쓴 것에 대해 “모든 정보를 주는 대신 독자 스스로 파편을 재배열해 서사를 이루도록 유도한 것”이라고 했다. 예컨대 이런 문장들. ‘단순한 생명의 기쁨을 회복하고 싶은 자는 은둔을 꿈꾼다.’ ‘괴물은 은둔하지 않는다.’ ‘은둔은 사회적인 것, 지배적인 것, 패권적인 것으로부터의 필사적 탈주다.’
그가 보기에 코로나 사태는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400년을 지속해 온 ‘인간 중심’의 인류 문명사가 21세기에 이르러 수정되는 것을 의미하는 하나의 신호다. 생산적 삶의 가치를 위해 광폭하게 질주한 20세기 대신, 비(非)인간 생명체, 사물, 디지털, AI 같은 ‘인간이 아닌 것들’과 연결하고 공존하는 포스트휴머니즘의 시대로 전환한다는 얘기다.
“이건 사실 사회학자라는 정체성에 반(反)하는 얘기 같기도 합니다만.” 그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 아니라, 어떤 경우 ‘연결하고’ 어떤 경우 ‘연결을 끊는’ 동물, 은둔할 줄 아는 동물”이라고 했다. 은둔은 인간의 인간성이 누려 왔던 특권을 스스로 내려놓으면서 전진 대신 이탈하며, 스스로를 비우며 조금 느리게 사는 행위가 된다.
그는 전통적인 은둔이 세상에 오염되지 않는 탈속(脫俗)이었음을 믿지 않는다. 대개의 경우 권력에서 밀려난 자들이 재기를 꿈꾸는 일시적 와신상담의 방편이었다. 그러나 21세기의 은둔은 다르다. “세상과 거리 두기를 한 채 개인의 고유한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며 생각하고 노동하고 저항하며 창조하는 일을 지속하는 것입니다.” 책 제목 ‘은둔기계’의 ‘기계’는 들뢰즈 개념에서 유래한 것으로, 끊임없이 작동하는 생명성을 뜻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전면적 비대면(非對面) 사회가 도래하지 않는 이상 완벽한 은둔이란 어려운 일이다. 그는 “일상 속에 은둔의 요소가 녹아들어간 ‘부분적 은둔’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했다. “은둔을 ‘자발적 유배’라고 할 때, 글을 쓰는 모든 밤은 작가에게 하나의 유배지가 됩니다.”
새로운 은둔은 사적 삶의 추구가 아니라는 것도 중요하다. 디지털 네트워크 위에서 은둔지는 곧 세계고, 은둔지에서 벌어지는 일상은 그대로 공적 삶이 된다. “다만 사회의 격류에서 한 발 떨어져 흘려보낼 생존의 각도를 갖추는 것이죠. 조급함과 나태함을 버려야 안전한 미래를 맞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