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섭 연세대 명예교수의 최근 모습.

도시락 두 개 싸 들고 1년 365일 주말도 방학도 없이 연구실로 출근했다. 그 도시락을 싹 비우고 나서야 방을 나섰다. 설날과 추석에도 아침 일찍 차례를 지낸 뒤 어김없이 연구실로 직행했다.

‘광복 이후 한국 역사학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김용섭(89) 연세대 명예교수가 지난 20일 서울 은평구의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그는 ‘자본주의 맹아론(萌芽論)’과 ‘내재적 발전론’ 등의 이론을 내 식민사관을 극복하는 데 기여했다. ‘한국사의 숨은 신(神)’이란 별명까지 얻을 정도였다.

강원도 통천 출신인 김 교수는 서울대 사대 역사과와 고려대 대학원을 마친 뒤 척박했던 한국 농업사 연구에 투신했다. 그는 “6·25전쟁이 한말 일제하부터 이어 온 계급적 대립이 확대된 내전이라는 판단이 들어 역사적으로 살피게 됐다”는 것이다. 동학혁명에서 시작해 한국 전통 사회의 해체 과정을 실증적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조선 후기 사회가 외세의 작용이 없었더라면 충분히 혼자 힘으로 자본주의 사회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봤다. 토지 대장인 양안(量案)과 호적 대장을 치밀하게 분석해, 근대 경제로 변화하는 데 주체적 역할을 담당할 새로운 세력인 ‘경영형 부농(富農)’이 성장하고 있었음을 규명했다.

‘조선후기 농업사연구’ ‘한국근대 농업사연구’ 등 그의 연구는 한국 민족이 주체적으로 역사를 이끌 힘이 없어서 외세 지배를 받았다는 식민사관의 타율성론과 정체성을 떨치고 한국인이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갖게 하는 데 기여했다. 1980년대 이후 민중사관의 뿌리가 되기도 했고, 2000년대에는 지나치게 주체성을 강조한 도식적 이론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서울대 사대(1958~1966)와 문리대(1967~1975) 교수를 거쳐 연세대로 자리를 옮겼다. 1997년 정년을 맞은 뒤 2000년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 됐으며, 국민훈장 동백장(1997), 치암학술상(1984)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아내 김현옥씨와 아들 김기중 서울대 의과대 교수, 딸 김소연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3일 오전 6시. 조문은 21일에만 가능하다. (02)2072-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