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 수석 무용수 김기민. 테크닉과 해석력이 빼어나다. /박상훈 기자

“이 훤칠한 한국인 무용수는 마린스키의 새로운 별이다. 그의 점프는 경이롭고, 회전은 절묘하며, 움직임은 우아하다.”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 수석 무용수 김기민이 2015년 6월 미국 아메리칸발레씨어터(ABT)에 객원 주역으로 링컨센터에서 ‘라 바야데르’를 공연한 다음 날 뉴욕타임스에 실린 평이다. 무용계의 아카데미상 ‘브누아 드 라 당스’는 2016년 그를 수상자로 호명했다. 현재 세계 최정상의 발레리노다.

국립발레단이 올봄 ‘라 바야데르’(4월 27일~5월 2일 예술의전당)에 김기민(29)과 올가 스미르노바(42·볼쇼이발레단 수석)를 초청한다고 발표하자 발레 팬들은 “브라보!”를 외쳤다. ‘라 바야데르’는 고대 인도를 배경으로 전사 솔로르와 무희 니키아, 공주 감자티와 승려 브라민의 사랑과 배신, 복수와 용서를 그린 작품이다. 이달 초 예매가 시작되자 김기민이 출연하는 회차(총 2회)는 1분도 안 돼 1~2층 객석이 모두 팔렸다. 전 석 매진. 그런데 이 ‘마린스키의 왕자’ 때문에 국립발레단이 고민에 빠졌다.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 무용수 김기민. 테크닉과 해석력이 빼어나다. /박상훈 기자

김기민과 스미르노바의 입국 예정일은 4월 20일. 자가 격리 14일을 적용하면 무대에 오를 수 없는 일정이다. 국립발레단 홍보팀은 “김기민과 스미르노바는 러시아에서 코로나 백신을 맞고 들어온다”며 “초청 공연을 논의한 지난 2월에는 우리 정부가 외국처럼 백신 여권을 도입해 자가 격리가 면제되거나 기간이 단축될 것으로 기대했다”고 말했다. 예매처에는 ‘캐스팅은 사전 공지 없이 변경될 수 있다’고 공지한 상태다.

아이슬란드가 올초 ‘백신 접종 증명서’를 발급하기 시작한 뒤 유럽 10여국과 이스라엘, 중국 등이 백신 여권(자가 격리 면제)을 도입했거나 도입 의사를 밝혔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블록체인 기반의 백신 여권을 곧 출시한다. 정부는 방역 당국과 백신 여권 도입 등을 논의해보겠다고 밝혔지만 후속 조치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코로나 사태 이후 협업이 필요한 발레, 오케스트라 등의 내한 공연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자가 격리 기간 동안 연습을 하기도 어렵고, 대면해 호흡을 맞추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세종문화회관도 오는 8월 홍콩 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홍콩 발레단, 11월 빈 필하모닉오케스트라(지휘 리카르도 무티) 등 내한 공연이 잡혔다고 발표했지만 자가 격리 면제나 축소가 없는 한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김기민 딜레마’는 우리 공연계가 백신 접종 이후 처음 마주한 시험대였다. 다음 달 그를 ‘라 바야데르’ 무대에서 보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문체부 공연전통예술과는 백신 여권 도입이나 자가 격리 단축 여부에 대해 “변종 바이러스가 등장한 상황에서는 국민 안전이 우선이고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중대본에서 자가 격리 단축에 대한 논의가 아직 없다”고 밝혔다. 국립발레단은 “막연히 기다릴 수는 없고 관객 불편도 줄여야 해 대체 캐스팅을 곧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국립발레단이 4월 말 '라 바야데르'에 주역으로 초청한 김기민(왼쪽)과 올가 스미르노바(오른쪽). 김순정 성신여대 교수는 저서 '발레 인사이트'에서 "긴 스카프를 남녀 주인공이 함께 들고 추는 '라 바야데르' 2막 2인무는 그 모습이 절묘하게 아슬아슬하면서도 슬프다"고 했다. /국립발레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