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자백'의 배우 김윤진. "105분을 순삭할 자신이 있어요. 영화 보기 전에 화장실 꼭 다녀오세요. 30초도 놓치면 안 되는 영화입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김윤진(49)의 입에서 “후배들아, 니들이 부럽다”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시작을 알린 영화 ‘쉬리’(1999)로 신인상을 휩쓸고 ‘밀애’(2002)로 청룡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2004년엔 미국 ABC 드라마 ‘로스트’로 월드 스타가 됐다. ‘로스트’는 2010년 시즌6까지 이어질 만큼 흥행했다. 1426만명을 모은 ‘국제시장’(2014)의 여주인공도 김윤진이었다. 그런데 후배들이 부럽다고?

“K콘텐츠의 인기를 봐요. 20년 전 제가 할리우드에 진출하려고 몸부림칠 때는 상상도 못한 일이에요. 일찍 가서 고생한 게 억울해요. 10년만 젊었으면 좋으련만. 하하.”

영화 ‘자백’ 개봉(26일)을 앞두고 지난 20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김윤진이 고백을 하고 있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종이의 집’에 출연하긴 했지만 극장 개봉작은 ‘시간 위의 집’(2017) 이후 5년 만이다. ‘자백’은 밀실 살인 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사업가 유민호(소지섭)와 승률 100%의 변호사 양신애(김윤진)가 무죄를 입증하려고 사건을 재구성하는 스릴러다.

26일 개봉하는 영화 ‘자백’은 눈 내리는 산속 별장을 배경으로 살인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스릴러다. "고통 없는 구원은 없어요"라고 말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세븐 데이즈’ ‘이웃 사람’ 이후 ‘스릴러 퀸’이라 불리는데.

“그 장르를 의식하는 건 아니고, 저도 관객 입장에서 추리하는 기분이라 스릴러를 좋아해요. ‘자백’은 시나리오만큼만 나오면 성공이겠다 싶었어요. 캐릭터가 다 살아 있습니다. 메시지도 묵직하고 ‘잘 빠진 영화’예요.”

–원작인 스페인 영화 ‘인비저블 게스트’도 재미있게 봤습니다.

“서로 맛이 다른 영화라고 생각해요. 중반까지는 원작의 틀을 가져오지만, 한국 리메이크는 반전만을 위한 영화가 아니고 정서도 더 깊어요. 사람의 가치를 일깨우는 메시지도 묵직합니다.”

범죄 스릴러 '자백' /롯데엔터테인먼트

–1인 2역을 하는 기분으로 임했다고요?

“관객은 양신애의 눈으로 사건을 봅니다. 가속할지 감속할지 제가 결정해야 했어요. ‘이 장면에서는 한 스푼만 더, 반 스푼만 덜’ 하는 식이었죠. ‘자백’은 매우 지적이고 우아한 복수 이야기예요. 아슬아슬하면서도 즐거웠어요.”

–연기는 하면 할수록 수월해지나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낯선 누군가의 삶을 대신 표현해야 하는데 정답은 없어요. 늘 제로(0)에서 시작하지요.”

영화 '자백'의 배우 소지섭 /롯데엔터테인먼트

-개봉을 앞두고 어떤 근심이 있습니까.

“손익분기점이 140만명인데 입소문만 타면 잘될 영화예요. ‘자백’ 좀 도와주세요.”

–자뻑 아닌가요. 천만 배우가 왜 140만명에 벌벌 떠실까.

“요즘 박스오피스 총 관객을 보세요. 지금 비수기예요. 11월 초에 개봉할 마블 영화 ‘블랙 팬서’도 무서워요.”

미국 드라마 '로스트'의 김윤진(왼쪽)과 전체 출연진

–K콘텐츠가 주목받고 있는데 월드 스타로서 한 말씀 하신다면.

“이정재 등 한국 배우들이 에미상 받는 걸 보면서 땅을 쳐요. 후배들아, 니들은 좋겠다. 나는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미국 진출했는데 지금은 한국에 있어도 글로벌 스타가 되는 시대예요. 요즘 한국 콘텐츠의 인기는 ‘기적’ 같아요. 누군가 수상할 때마다 눈물이 났습니다. 기회가 왔을 때 잘 유지하고 길게 뽑아먹어야 해요.”

–여배우들은 ‘중년의 위기’를 겪는다는데.

“실감해요. 요즘 그 구간을 지나고 있어요. 엄마를 맡기에는 좀 아깝고 그렇다고 주인공으로 이끌기엔 핵심 관객의 연령대와 맞지 않으니까. 참 애매한 나이죠. 나이를 10년 더 먹으면 대놓고 엄마나 할머니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마라토너처럼 달려 오늘에 이른 윤여정 선생님을 보면서 현실을 무겁게 받아들입니다. 이젠 일이 없어도 전전긍긍 안 하고 놀아요(웃음).”

축구로 치면 후반전 휘슬이 울렸다. 배우로서 어떻게 플레이하고 싶은지 묻자 기다렸다는 듯 이런 답이 돌아왔다. “플레이를 바꾼다고 뭐 달라질 것 같진 않고 까먹을 만하면 나오는 지금 이대로도 좋아요. 다만 감독님들한테 이 말을 해야겠어요. 저한테 왜 늘 정의롭고 정직한 캐릭터만 주시나요? 악역(惡役)도 잘할 자신이 있습니다!”

김윤진은 영화 '노매드랜드(Nomadland)’의 배우 프랜시스 맥도먼드처럼 용감한 연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