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함민복 시 ‘긍정적인 밥’에는 당시 물가가 공룡 화석처럼 남아 있다. 시집도 국밥도 3000원이었다. ‘긍정적인 밥’이 수록된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창비)는 1996년 10월 세상에 나왔다. 문학과지성사와 민음사는 최근 시집 가격을 1만2000원으로 인상했다. 함민복 시인이 긍정적인 밥을 짓던 시절과 견주면 4배로 상승한 셈이다.

국립극단이 1992년 공연한 연극 '안네 프랑크의 장미'. 당시 표값은 R석 1만원, S석 8000원, A석 5000원, B석 3000원이었다.

지난 30년 동안 시집,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문화 상품의 정가(定價)는 어떻게 변했을까. 1992년과 2022년에 소비자가 지불하는 비용을 단순 비교했다. 연극은 최고 10배, 시집은 4배, 영화는 3배로 값이 뛴 것으로 나타났다.

1992년에는 정현종 시집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을 3000원에 살 수 있었다. 최영미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1994년 초판 역시 3000원. 시집 정가는 1990년대 후반 4000원, 2000년 들어 5000원으로 상승했고 2006년에 판매한 기형도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은 6000원이었다.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팀 김필균 부장은 “문지는 어려움 속에서도 시집 가격을 9000원으로 오래 유지했지만 최근 용지·인쇄·물류 등 제작비가 크게 올랐다”며 “부득이하게 1만2000원으로 인상했다”고 설명했다.

영화 '원초적 본능'(1992)의 배우 샤론 스톤. 관람료 5000원 시대를 열었다.

영화는 1980년대까지 방화(한국영화)와 외화의 관람료가 달랐다. 단관 개봉 시절이라 극장마다 정가도 제각각이었다. 관객은 1992년 ‘황비홍’을 국도극장에서 4500원, 같은 해 ‘원초적 본능’을 허리우드극장에서 5000원에 봤다. 현재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주말 일반관 기준으로 1만5000원을 내야 한다(4DX는 1만9000원, IMAX관은 2만원). ‘원초적 본능’의 배우 샤론 스톤이 나이를 서른 살 더 먹는 사이 관람료가 3배로 오른 셈이다.

국립극단은 1992년 9월 국립극장 대극장(현재 해오름극장)에서 연극 ‘안네 프랑크의 장미’를 공연했다. 백성희 전국환 정상철 손봉숙 등이 출연했다. 공연예술박물관에 따르면 당시 표값은 R석 1만원, S석 8000원, A석 5000원, B석 3000원. 그 국립극단이 오는 5일부터 명동예술극장에 올릴 연극 ‘세인트 조앤’은 R석 6만원, S석 4만5000원, A석 3만원을 받는다. 30년 전과 견주면 표값이 6~10배로 상승했다.

1994년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신시컴퍼니

그렇다면 뮤지컬은 어떨까. 극단 신시는 1994년 9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공연했다. 입장료는 R석 5만원, S석 4만원, A석 3만원, B석 2만원, C석 1만원. 11월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개막할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VIP석 16만원, R석 13만원, S석 10만원, A석 7만원이다. 최고가는 3.2배로 올랐지만 가장 저렴한 객석은 7배로 가파르게 뛰었다. B석, C석은 사라진 지 오래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에 로열티(매표 수입의 약 15%)를 지불하는 라이선스 뮤지컬들은 요즘 환율 폭등으로 비상”이라며 “표값도 높아졌지만 가장 비싼 VIP석의 비율을 대폭 늘리기도 한다”고 전했다.

30년 전에 2300원이던 맥도날드 ‘빅맥’은 지금 4900원이다. 공연 물가가 두드러지게 뛴 까닭은 매일 몸으로 하는 아날로그 예술이기 때문이다. 영화나 책은 일단 만들어지면 복제할 수 있고 유통망도 잘 구축돼 있지만 공연은 배우가 날마다 한 장소에서 완성하는 ‘라이브’다. 박병성 공연칼럼니스트는 “그럼에도 뮤지컬 표값은 너무 비싸고 다양성이 부족하다”며 “톱스타 한 명이 회당 제작비의 30%를 출연료로 가져가는 인건비 구조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박돈규·이영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