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한국 제작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의 황동혁 감독이 12일(현지 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 극장에서 열린 제74회 프라임타임 에미상 시상식에서 드라마 시리즈 부문 감독상을 받았다. /트위터

“여기까지 온 것만도 영광인데 이렇게 트로피까지 받아 훨씬 더 큰 영광이다. 작품상을 못 타서 뭔가 놓친 기분이긴 하다(웃음). 하지만 시즌2로 돌아온다. 기다려라!”

올해 에미상 시상식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으로 감독상을 차지한 황동혁(51) 감독은 백스테이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수상의 기쁨, 작품상을 놓친 아쉬움, 시즌2에 대한 자신감이 동시에 묻어났다. 시즌2가 궁금하다고 하자 “시즌2의 에피소드 6 집필을 막 끝냈다. 반쯤 온 것”이라며 황 감독이 말을 이었다. “가장 큰 차이는 성기훈(이정재)의 캐릭터다. 그는 시즌1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지지 않고, 복수를 향해 간다.”

에미상 시상식에서 비영어권 드라마가 감독상을 받기는 처음이다. 벤 스틸러(세브란스: 단절), 마크 미로드(석세션), 캐린 쿠사마(옐로우재킷), 제이슨 베이트먼(오자크) 등 쟁쟁한 경쟁자를 제쳤다. 수상자로 호명된 황 감독은 미리 적어온 메모지를 보며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역사를 만들었다”며 “비영어 시리즈의 수상이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기를 희망한다”고 영어로 수상 소감을 밝혔다.

13일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 시어터에서 열린 제74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오징어게임의 황동혁 감독과 배우 이정재가 각각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오징어게임’ 속 기훈과 상우(박해수)의 캐릭터와 가족사에는 작가 겸 감독의 어린 시절이 담겨 있다. 황동혁은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서 태어나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할머니는 시장에서 좌판을 깔고 나물을 팔았다. 그는 ‘쌍문동 수재’로 서울대에서 신문학을 전공했다. 미국으로 영화 유학을 떠날 땐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을 만큼 가난했다.

2007년 ‘마이 파더’로 데뷔한 황동혁 감독은 ‘도가니’ ‘수상한 그녀’ ‘남한산성’ 등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상업영화를 만들었지만 2009년에 각본을 쓴 ‘오징어게임’은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캐스팅도 투자도 힘들었다. 실직 후 이혼하고 사채까지 쓰는 기훈을 포함해 456명이 456억원의 상금을 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벌이는 이 서바이벌 게임은 미국 넷플릭스 자본을 만나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 12년이 걸렸다.

황동혁 감독은 "서바이벌 게임 장소는 개미굴 구조에서 힌트를 얻었다"며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판타지 공간으로 표현하고 싶어 알록달록한 색을 사용했다"고 한다. /넷플릭스

“10여 년 사이에 부동산 값이 급등하고 가상화폐에 돈이 몰리고 투기 열풍이 일어나 빈부 격차는 심해졌는데 팬데믹까지 오면서 세상이 점점 더 살기 어려워졌다. ‘오징어게임’ 같은 상황이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고, 보는 사람이 감정이입해 공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OTT 플랫폼은 작품의 러닝타임이나 표현 수위 등 여러 제약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황 감독은 “한국 작품 최초로 미국 넷플릭스 차트에서 1등 한번 해보고 싶다는 목표로 꿈을 갖고” 이 시리즈를 만들었다. 제작까지 12년이 걸렸지만 세계 정복에는 12일도 걸리지 않았다. 이날 시상식 후 한국 기자단과 회견에서 그는 “지난 1년은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연속된 시간”이라며 “그 여정의 피날레가 오늘이었는데 이렇게 트로피를 가지고 돌아가게 돼 행복한 밤”이라고 말했다. “에미상 시상식에 다시 돌아온다면 작품상을 받고 싶다”고도 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참가자들에게는 초록색 체육복을, 관리자들에겐 핫핑크 점프 슈트를 입히는 등 색의 대비에도 신경을 썼다. /넷플릭스

‘오징어게임’은 극한의 경쟁을 조장하는 현대사회에 대한 우화다. 세계적으로 흥행한 비결을 묻자 황 감독은 “글로벌 시청자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언어를 초월하는 상징과 기호, 색깔을 직관적으로 사용했고 구슬치기나 홀짝처럼 누구나 금방 파악할 수 있는 게임을 골랐다”며 “빈부 격차와 자본주의의 결함은 어느 나라에서나 공감하는 문제라 공감을 얻은 것 같다”고 답했다.

따라할 수 있는 의상, 강력한 ‘밈(meme·인터넷 놀이처럼 유행하는 이미지)’으로 퍼진 동그라미(Ο) 세모(△) 네모()도 사랑받았다. 전중환 경희대 교수(진화심리학)는 “놀이가 생존에 중요한 사회성을 길러준다”며 “이번 ‘오징어게임’ 현상은 노는 게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했다.

에미상 무대에 등장한 오징어 게임 '영희' - 12일(현지 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 극장에서 열린 제74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배우 이정재와 정호연이 시상자로 무대에 올랐다. 이 무대 오른쪽에 드라마 속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의 술래 영희가 보인다. /AP 연합뉴스

“무엇이 정의로운 사회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무엇이 정의롭지 않은지는 누구나 안다. 나는 해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창작자로서 문제를 제기하고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할 뿐이다. 시즌1에서 기훈의 마지막 대사처럼 인간성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황동혁 감독)

뉴욕타임스는 에미상 시상식 직후 “이번 ‘오징어게임’의 수상은 외국어 드라마가 에미상의 장벽에 큰 돌파구를 뚫은 셈”이라며 “자막이 붙은 시리즈를 거부감 없이 수용하는 미국 시청자가 많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인이 만들면 전 세계가 본다”(넷플릭스 CEO 리드 헤이스팅스)는 말은 더 이상 과장이 아니다. 시즌2를 앞둔 황 감독은 “취향이 까다로운 한국 관객 덕분에 조금씩 발전하고 더 나은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며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만들고 (관객이) 좋아해주기를 간절히 바라자’는 내 신조처럼 시즌2로도 기대에 응답하겠다”고 했다.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이 에미상 드라마 부문 감독상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그는 "넷플릭스에 큰 감사를 드린다"며 최근 위기에 처한 넷플릭스를 추켜세웠다. /AF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