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터널스’에 나오는 히어로 10명. 마동석(왼쪽에서 셋째)은 이 마블 영화로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세계적인 배우 앤젤리나 졸리와 ‘왕좌의 게임’으로 유명한 리처드 매든이 출연하며 사랑과 질투, 배신 등 인간 본성의 여러 측면을 보여준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영화 ‘이터널스(Eternals)’를 이야기하려면 ‘어벤져스’로 시작해야 한다. 수천 년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온 불멸의 히어로들이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 이후 인류의 가장 오래된 적(데비안츠)에 맞서기 위해 다시 힘을 합친다. 어벤져스 시리즈(총 4편)는 화려한 액션과 서사, 속도감과 위트로 히어로 영화의 수준을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았다. ‘이터널스’는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헐크, 토르, 블랙 위도우처럼 관객의 마음을 훔치며 그 전설을 이어갈 수 있을까.

11월 3일 개봉할 이 마블 영화는 첫 장면부터 대담하다. 지난 7000년을 훑을 기세다. 출발은 기원전 5000년 메소포타미아. ‘이터널스’는 기원전 575년 바빌로니아의 수도 바빌론, 1945년 원폭으로 폐허가 된 일본 히로시마 등을 거쳐 현재까지 인류 역사의 변곡점들을 재현하며 카메라에 담았다. 새로운 수퍼히어로 10명이 등장한다. 동양과 서양, 청각장애인과 동성애자까지 아우르는 유사(類似) 가족이다. 태초부터 인간을 지켜온 이 팀의 명칭은 ‘이터널스’. 불멸의 존재다.

솔직히 말하자. 10명은 너무 많다(어벤져스 원년 멤버는 6명이었다). 영화는 히어로들의 이름과 특징, 관계를 설명하는 데 1시간을 소비한다. 덩치가 크고 복잡해 예열하느라 복장 터지는 최첨단 무기 같다. 데비안츠와 싸울 때 런던의 버스를 빨간 꽃잎으로 바꿔놓는 장면 등 놀라운 초능력과 시각효과를 보여주지만, 지구에 흩어진 히어로들을 다시 소집하는 초반부는 승차감이 좋지 않다. 산만해질 수 있어 인내심을 요구하는 구간이다.

영화 '이터널스'의 두 주인공.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히어로 10명 중 가장 비중이 큰 둘은 세르시(젬마 찬)와 이카리스(리차드 매든). 세르시는 위험한 물체를 무해하게 바꿔놓는 변환 능력을 지니고 있다. 멤버들 중 가장 강력한 이카리스는 하늘을 날 수 있고 눈에서 레이저빔을 쏜다. 둘은 오랫동안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해온 연인 사이인데, 인간과 함께 삼각관계에 놓인다. 한국 관객에겐 길가메시(마동석)가 먼저 보이고 BTS라는 단어도 들린다. 길가메시는 테나(안젤리나 졸리)를 보호하면서 복싱을 바탕으로 한 액션과 ‘근육질 유머’로 재미를 더한다.

‘이터널스’는 코로나 사태를 뚫고 개봉한 할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다. 제작비는 2억달러(약 2346억원). 한국 영화라면 ‘모가디슈’(240억원)를 10편 만들 수 있는 거액이다. 이 히어로 영화에서 마블은 ‘노매드랜드’의 클로이 자오와 손을 잡는 도박(?)을 했다.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사색적이고 희망적인 드라마를 길어올려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을 받은 중국계 감독. 진짜 사막, 진짜 바다, 진짜 화산에서 촬영하기를 고집하고 장엄한 풍경(특히 일몰)과 서정성을 놓치지 않는 솜씨는 여전하다. 안타깝게도 액션 장르에 능한 감독은 아니었다.

이 수퍼히어로 영화는 종종 인간이 되고 싶어한 영웅들이 인간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불멸은 불편할 수도 있다. ‘시간을 아껴 살아야 한다’는 교훈은 평범하지만 차원이 다르다. ‘이터널스’는 속편이 이어질 예정이다. 보통 관객에게는 쾌감보다 실망감이 더 크다. ‘마녀의 솥단지’와 같고 다음 국자에 어떤 내용물이 담겨 나올지 종잡기 어렵다. 그 맛도 보장할 수 없다. 러닝타임 155분.

영화 '이터널스'에 등장하는 우주선. 기원전 5000년에 외계인들이 지구로 오면서 출발하는 이야기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