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최종 오디션 /신시컴퍼니

2000년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본 가수 엘턴 존은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흐느꼈다. 평범에서 벗어나려는 주인공 빌리의 투쟁, 부모가 바라는 아들에서 도망치는 모습이 어린 시절 자신과 닮았다고 했다. 스티븐 달드리 감독은 그날 밤 엘턴 존이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만들자고 제안했을 때 “실현 불가능하다”며 거절했다.

하지만 엘턴 존은 끝장을 보는 성격이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2005년 영국에서 초연했고 2009년 미국 토니상에서 작품상·연출상 등 트로피 10개를 쓸어 담았다. 달드리는 “엘턴 존과 그의 음악이 없었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성공”이라며 “나도 처음엔 회의적이었지만 배우들을 모아 연습하는 과정에서 이 뮤지컬만 가진 특별함을 봤다”고 했다. 영화 ‘디 아워스’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로도 기억되는 그를 ‘빌리 엘리어트’ 한국 공연(31일부터 서울 디큐브아트센터)을 앞두고 이메일로 만났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연출한 스티븐 달드리. 그는 “뮤지컬은 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장르”라며 “엘턴 존이 없었다면 탄생하지 않았을 작품”이라고 했다. /신시컴퍼니

–무엇이 그렇게 특별합니까.

“춤이 탄광촌 소년을 어떻게 구원하는지 눈앞에서 보여주니까요. 저는 그 배역(빌리)을 ‘마라톤을 뛰면서 햄릿을 연기하는 것’에 비유하곤 합니다. 이 뮤지컬은 어린 주연 배우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드문 작품이고, 우리는 그를 능력의 한계까지 끌어올립니다.”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이었나요.

“무대에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결정하는 일이었습니다. 1년간 준비시킨 소년이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지, 또 무엇은 무리인지.”

–영화와 뮤지컬의 차이라면.

“영화는 백지에 그림을 그리듯 아무 제약이 없어요. 하지만 ‘빌리 엘리어트’를 뮤지컬로 옮길 땐 영화를 휴지통에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영화는 한 번만 잘 만들면 되지만 뮤지컬은 1주일에 8번 공연할 수 있어야 해요. 기술, 제작 방식, 리허설 과정이 완전히 달라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2018년 공연 장면. 이번 무대에서는 김시훈, 이우진, 전강혁, 주현준 등 4명이 주인공 빌리를 연기한다. /신시컴퍼니

-빌리가 ‘남자라면 권투나 레슬링을 해야 한다’는 아버지를 설득하는 대목이 명장면입니다.

“빌리는 말로 할 수 없는 것, 그렇다고 침묵할 수도 없는 것을 춤으로 표현해요. 로열발레학교 오디션에서 ‘춤출 때 어떤 기분인가?’ 물을 때 빌리는 사실 아버지에게 답하는 셈입니다. ‘디 아워스’ ‘더 리더’에서도 그랬지만 저는 슬픔과 상실에 관심이 많아요. 빌리의 꿈 못지않게 가족과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코로나 이후 어떻게 지냈나요.

“영국에 봉쇄령이 내려진 동안 미국에 있었어요.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 시즌5를 다시 촬영하고 있는데, 이멜다 스탠튼(엘리자베스2세)과 조너선 프라이스(필립공)로 주연 배우가 바뀌었지만 기대가 큽니다.”

–‘빌리 엘리어트’ 한국 공연이 곧 시작되는데.

“놀라운 흥행 성적을 거둔 한국으로 돌아온다니 기뻐요. 새로 뽑힌 배우들이 얼마나 멋진 무대를 보여줄지 궁금합니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앵그리 댄스. 노래와 연기는 물론 다양한 춤을 소화해야 하는 빌리는 잠재력과 성장 과정 등을 보고 선발한다. /신시컴퍼니

–한국의 빌리 4명은 코로나 속에서 1년 넘게 맹연습을 해왔습니다. 힘이 되는 조언이라면.

“이 뮤지컬의 성공은 빌리를 연기하는 그 소년들의 어깨에 달려 있어요. 춤이든 노래든 연기든 힘들 수 있겠지만, 유머와 투쟁심은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 조언은 윌킨슨 부인(발레 강사)의 대사 그대로예요. 빌리, 넌 할 수 있어!”

–가장 좋아하는 삽입곡은.

“엘턴 존은 보드빌, 발라드, 로큰롤 등 다양한 음악을 넣었는데 저는 ‘그 옛날 우리 모두는 왕이었네’를 가장 좋아해요. 2막 마지막에 광부들이 일터로 돌아가며 부르는 노래죠.”

그 장면에서 광부들은 캄캄한 막장에서 캡램프를 켠다. 빌리는 객석 통로로 걸어나간다. 달드리는 “드라마에는 희망의 불꽃이 필요한데 ‘빌리 엘리어트’에서 빌리와 탄광촌 사람들은 오직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버틴다”며 “나도 서울로 날아가 직관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했다.

2021년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하이라이트 영상. 빌리 4명이 대표곡 'electricity'를 부르며 춤 솜씨를 증명한다. /신시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