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토그램(pictogram·그림문자)이 체면을 살렸다.
지난 23일 열린 도쿄올림픽 개회식은 놀랍거나 감동적인 장면이 없어 무겁고 재미없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히트 상품이 하나 있었다. 개회식 막바지에 등장한 픽토그램 쇼. 두 배우가 올림픽 50개 종목을 픽토그램으로 위트 있게 형상화했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SNS)에서는 “폭망할 뻔했는데 이건 진짜 인정한다” “꿀잼. 몇 번째 돌려보는지 모르겠다” “이거 말곤 기억이 안 나네. 최고” 같은 반응이 나왔다.
픽토그램은 1964년 도쿄올림픽 때 일본어를 모르는 선수들과 관람객들을 위해 처음 사용됐다. 현재의 화장실 마크도 당시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세계 표준이 됐다. 이번 올림픽 개회식에서는 몸에 착 달라붙는 ‘픽토그램 슈트’를 입은 두 배우가 50개 종목을 마임(무언극)으로 표현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마임 듀오 ‘가베지’의 마사와 히토시가 주인공이다. 라켓을 떨어뜨리는 실수를 했지만 신선하고 명쾌한 코미디로 웃음을 줬다. 히토시는 SNS에 “굉장히 초조했지만 즐거웠다”는 소감을 남겼다.
코로나 속에 반대를 무릅쓰고 치러진 도쿄올림픽은 웅장하고 화려한 개회식이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영국 정치 매체 ‘폴리틱스’의 편집장 이언 던은 “일본은 엉뚱하고 흥미진진한 나라인데 이번 개회식은 장례식장 같았다”고 혹평했다. 그나마 픽토그램 쇼는 코로나 시대에 허락된 소박한 엔터테인먼트였다. 평창올림픽 개·폐회식 기획제작단장을 지낸 이도훈 홍익대 교수는 “픽토그램 마임은 디자인부터 공연까지 창의적이었고 위트와 유머가 돋보였다”고 말했다.
픽토그램이 화제를 모으자 패러디도 나왔다. 일본 전 야구 국가대표 GG 사토는 픽토그램처럼 하얀 타이즈에 파란 옷을 걸치곤 한 손에 글러브를 낀 채 야구공을 놓치는 셀카를 찍어 SNS에 올렸다. 제목은 ‘종목: GG 사토’였다. 그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야구 한일전(준결승)에서 평범한 외야 뜬공을 놓쳐 한국에 승리를 헌납했다. 당시 해설자가 던진 “고마워요, GG 사토!”는 한동안 유행어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