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법원은 지난 2019년 1월 ‘라인네카블로그’라는 인터넷 매체에 벌금 1만2000유로(약 1600만원)를 선고했다. 블로그에 올라온 ‘만하임서 대규모 테러 공격 발생… 사망 136명, 부상 237명’ 기사 때문이었다. 주목을 끌려고 제목에 [단독] 문구를 넣고, 피 묻은 옷 사진 등을 첨부했다. 한껏 자극적 내용을 넣은 전형적인 가짜 뉴스. 해당 매체는 “실제 테러 발생 시 대응을 위해 경각심을 주기 위한 저널리즘의 한 형태”라는 어이없는 주장을 펼쳤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유럽, 허위 정보 방치 플랫폼 처벌 강화
허위 조작 정보로 골머리를 앓는 것은 해외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유럽을 중심으로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를 처벌하는 조항이 강화되고 있다. 국가별 대응에 이어 내년부터는 EU 차원에서 이른바 DSA(디지털 서비스법)가 본격 시행에 들어간다. 플랫폼 기업들이 허위 정보나 성·종교에 대한 차별적 콘텐츠 등을 걸러내지 못할 경우, 글로벌 매출의 최대 6%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막강한 강제 조항을 담고 있다.
이에 앞서 독일에선 2018년부터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에서 이른바 ‘혐오 발언’과 ‘가짜 뉴스’를 막기 위한 ‘네트워크 시행법(NetzDG)’을 발효했다. 이 법은 플랫폼 기업들이 불법 콘텐츠를 삭제하지 못하거나, 혐오·선동·테러 관련 내용 신고가 연 100건 이상 발생할 경우 정부에 정확한 내용을 신고하지 않으면 최대 5000만유로(약 690억원)까지 벌금을 부과할 수 있게 했다. 이 법을 근거로 2019년 7월 독일 법무부는 “페이스북 투명성 보고서에 담긴 불법 콘텐츠 신고 건수가 유튜브나 트위터보다 훨씬 적으며, 통계가 투명하지 않다”면서 벌금 200만유로(약 27억원)를 페이스북에 부과하기도 했다.
프랑스는 2018년 허위 조작 정보로 인한 선거의 왜곡을 막고자 선거 기간 허위 정보 민사 속결 심리제 등을 규정한 ‘정보 조작 대처법’을 마련했다. 2019년에는 소셜미디어에 차별·혐오가 명백한 콘텐츠가 올라오면 해당 기업이 이를 24시간 안에 삭제토록 의무화했고, 위반 시 최대 125만유로(약 17억2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가짜 뉴스를 퍼뜨릴 경우,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도 감수해야 한다. 미국 코네티컷주 법원은 지난 2012년 어린이 20명과 교직원 6명이 사망한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이 조작됐다고 주장해온 음모론자 앨릭스 존스에게 9억6500만달러(약 1조2600억원)의 배상을 최근 명령했다. 사망자 유가족과 연방수사국 수사관 등은 가짜 뉴스를 유포한 존스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존스는 음모론을 퍼뜨려 거액의 재산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짜 뉴스에 직접 대응하는 국가들
지난 8월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했을 때, 중국계 인터넷에 ‘타오위안 공항 미사일 공격’ ‘중국 군함, 동해안 근접’ 등의 가짜 뉴스 270여 건이 유포된 것으로 나타났다. 대만 정부는 이를 중국이 고의 유포한 것으로 보고 국가 안보 차원에서 대응하고 있다.
대만은 2018년 일본 태풍으로 오사카 간사이국제공항이 침수됐을 때 ‘중국은 자국민 대피 버스를 보낸 반면, 대만은 국민을 방치했다’는 가짜 뉴스로 비난에 시달린 공무원이 목숨을 끊은 이후 ‘재해 방지 구조법’을 개정했다. 허위 정보 때문에 사람이 다치면 10년 이하 징역, 사망자 발생 시 최고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러시아발 가짜 뉴스의 직접적 영향권에 놓인 스웨덴·노르웨이 등은 국가 안보 차원의 대응을 강화하기 위해 정부 조직법상 정보기관의 직무 범위에 ‘국가 배후 허위 정보 유포 행위 대응’을 명시하기도 했다.
◇국내 논의는 제자리걸음
우리나라에선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연간 14만~15만건의 불법 정보 삭제 및 접속 차단 조치 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방심위의 심의 대상은 도박, 불법 식·의약품, 성매매·음란 정보 등일 뿐, 허위 정보는 포함되지 않는다. 2010년 이른바 ‘미네르바’ 사건에서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해 허위 통신을 한 자’에 대한 처벌 조항이 위헌 결정을 받은 후 보완 입법이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방심위 관계자는 “가짜 정보에 대응하려면 허위 정보의 범위·대상 등에 대한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회 논의는 사실상 멈춰 있다. 20대 국회에서만 43건의 허위 조작 정보 관련 법안이 발의됐으나 처리되지 않았고, 21대도 작년 9월까지 18건이 발의됐으나,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이재진 한양대 교수는 “이제는 허위 정보가 정상적 여론 형성까지 가로막는 상황”이라면서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좀 더 진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