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백명산

후카다 규야 지음 | 강승혁 옮김 | 글항아리 | 768쪽 | 6만5000원

“팔면영롱(八面玲瓏)이란 말은 후지산으로부터 생겨났다. 동서남북 어디에서 보아도 그 아름답고 가지런한 모양새는 변함이 없다. … 후지산은 그저 단순하고 크다. 그것을 나는 ‘위대한 통속’이라 부른다. 잔재주를 부리지 않는 크나큰 단순함이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산인 후지산에 대한 이 책의 서술이다.

1964년에 출간된 ‘일본백명산’은 ‘산의 나라’라 할 수 있는 일본에서도 전설적인 명저로 꼽힌다. 이 책에서 유래된 ‘백명산’이라는 말 자체가 일본의 등산 관련 거의 모든 콘텐츠의 해시태그가 됐을 정도이고, 이 책의 제목을 언급한 뒤 몇 줄 인용하는 일 역시 부지기수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저자가 누구였는지도 희미해졌다고 한다.

작가이자 등산가인 후카다 규야(深田久彌·1903~1971)가 일본 전역의 산 100곳에 대한 수필을 쓴 것이 이 명저다. 산의 품격과 역사와 개성, 1500m 이상 높이, 개성이 있는 산 등을 기준으로 산을 선정했다. 험준하고도 굳센 아름다움이 있어 무언가 사람의 마음을 두드려 오는 산, 예술 작품처럼 현저한 개성이 사람을 끌어당기는 산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문장마다 감탄이 우러나오는 유려하며 인문학적인 서술을 쏟아내 두꺼운 책 한 권을 만들었다.

이 책은 현실의 등반과는 거리가 있다. 저자가 등산 활동을 했던 시기로부터 한 세기 정도 차이가 난 지금은 산머리 턱밑까지 자동차 도로가 들어섰거나, 호황이 지나 산록에 들어선 시설이 폐기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역자의 말처럼 ‘숲내음에 둘러싸여 새 소리를 들으며 눈을 뜨고 산길을 거닐려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는 있다. ‘그 산에 가고 싶다’는 마음을 이보다 충실하게 생겨나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연을 소재로 한 수필집의 전범(典範)으로 볼 수도 있다.

한국판은 세심하고도 방대한 번역 작업이 주목된다. 말의 고유성과 쓰임새를 고심했고 ‘삼국지’의 배송지 주(注)를 연상시키는 길고 충실한 역주를 달았으며, 지도를 그리고 사진을 하나하나 넣는 작업에도 신중을 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