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로 가는 길
캐서린 플레처 지음 |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592쪽 | 3만8000원
이 길은 영광스러운 유적지와 소나무 숲 사이를 지나며, 교외 별장과 수로의 잔해 속을 가로지른다. 포장도로 아래에는 지하 묘지 회랑이 이어지고 병풍 같은 산들이 그윽한 배경을 이룬다. 반란을 일으켰던 검투사 스파르타쿠스가 십자가에 매달려 로마를 탈출하는 처자식을 바라봤던 곳도, 로마를 빠져나가려던 사도 베드로가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겠다’는 예수의 목소리를 들었던 곳도 이 길 위였다. 비아(via) 아피아, 로마와 브린디시 항구를 남동으로 연결하는 길이다. 예전에 ‘비아’는 가도(街道)라고도 번역됐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할 때의 그 ‘길’이란 고대 로마가 건설한 도로망을 말한다. 그것은 단순한 기반 시설이 아니라 “인간이 세상과 자신을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낸 최초의 문명 네트워크였다”고 영국 역사학자인 저자는 말한다. 이 책(원제 ‘The Roads to Rome’)은 기원전 312년 아피우스 클라디우스가 건설한 비아 아피아에서 시작해 중세의 순례길인 비아 프란치제나, 나폴레옹의 군사 도로, 가리발디의 행군로, 무솔리니의 선전 거리, 현재의 로마 관광 코스에 이르는 길을 14국을 가로지르며 답사했다. 그리고 길이라는 서사로 유럽 문명 2000년의 역사를 풀어 냈다.
로마 제국의 중심에서 빛이 퍼지듯 방사형으로 연결된 도로는 행정과 군사, 경제와 종교의 기반이 됐다. 북쪽으로는 비아 플라미니아, 동쪽으로는 비아 에그타니아가 뻗어 있었고 로마의 군단이 이동하는 통로이자 세금, 법령, 예술과 언어가 전파되는 네트워크였다. 르네상스에 접어들면서 그 길들은 고전의 원천으로 회귀하는 지식과 예술의 길로 부활했다.
20세기 초에 이르면 그 도로는 산업화의 상징으로 변모했고, 근대 국가의 야망이 거기에 깃들었다. 무솔리니는 ‘고대 로마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며 도로를 선전물로 바꿨다. 지금도 사람들은 로마로 가는 길을 거닐며 그곳에 깃든 역사와 마주하는데, 어떤 도로는 2000년이 지나서도 차량이 다닐 만큼 견고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