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제국 연구
앤서니 G. 홉킨스 지음 | 한승훈 옮김 | 너머북스 | 1456쪽 | 6만6000원
1915년 영국은 이라크에서 오스만군을 상대로 ‘쿠트 포위전’을 벌였다. 88년 뒤인 2003년에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다. 둘 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영국과 미국 모두 점령이 아니라 해방을 위한 개입이라고 선언했으나, 결국 장기 주둔을 피할 수 없는 방식이었다. 영미 침략자들은 자신의 가치 체계가 절대적으로 우월하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었으며, 정작 현지 사회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다.
‘탈(脫)식민의 세계에서는 아무리 초강대국이라도 작은 나라조차 원하는 대로 굴복시킬 수 없는 구조가 이뤄진다’는 것을 1915년의 영국과 2003년의 미국 모두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 몰이해는 국제 사회에 커다란 악영향을 미쳤다. 이 책(원제 ‘American Empire: A Global History’)을 2018년에 쓴 영국 역사학계의 거장 앤서니 G. 홉킨스는 1915년과 2003년의 일을 방대한 저서 앞과 뒤에 배치함으로써 이렇게 속삭인다. 두 나라 모두 ‘제국’이었다고.
역사학자들은 흔히 말한다. 미국은 영국·프랑스 같은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과는 다른 궤적을 걸었다는 것이다. 식민 지배가 아닌 자체적인 힘을 축적해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나라가 미국이라는 얘기다. 홉킨스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미국 역시 서구 제국주의의 궤적을 밟은 국가였다며 미국 ‘예외주의’ 신화를 반박하고 해체한다. 그러기 위해 미국사의 서사를 유럽을 포함한 전 지구적 무대로 확산시킨다.
홉킨스가 보기에 세계화의 핵심 동력은 ‘제국’이었다. 그리고 제국이 이뤄낸 세계화의 주요 국면은 ①18세기 후반의 ‘초기 세계화’ ②19세기 말의 ‘근대 세계화’ ③20세기 중반 이후의 ‘탈식민 세계화’였다.
미국은 바로 ①의 상황에서 건국됐다. 그러나 남북전쟁 때까지도 옛 식민 모국 영국에 경제적으로 종속된 상태였다. 19세기 말이 돼서야 산업화를 통해 실질적인 독립을 쟁취했다. ‘근대 시기 최초의 탈식민 국가’가 미국이었다는 것이다.
이제 ②의 국면에서 미국은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처럼 국민 국가를 형성하고, 임금 노동자의 급증으로 새로운 유권자층을 얻었으며, 식민지 확장에 나섰다. 1898년의 미국·스페인 전쟁은 ‘미 제국주의’의 중요한 사건이었고, 미국은 쿠바, 푸에르토리코, 필리핀, 하와이를 해외 영토로 확보했다. 홉킨스는 “미국은 고립된 관찰자가 아니라 열성적인 참여자였다”고 말한다.
미국의 식민 지배 방식은 좀 달랐나? 그것도 아니었다. 직접·간접 통치 방식의 혼용, 동화(同化)와 연합 정책, 인종적 편견, 수출 작물의 확장과 값싼 노동력에 의존하는 경제 정책 같은 낯익은 양상들이 그대로 나타났다.
③의 상황에서 기존 식민지 체제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다. 1950년대부터는 공산품과 원자재를 교환하는 식민지 교역 패턴이 붕괴됐고, 선진국과 선진국 사이의 무역이 더 중요해졌다. 민족 자결주의와 인종 평등사상이 부상하면서 종래의 제국주의는 유지될 수 없었다.
미국은 전략을 바꿨다. 영토를 차지하는 대신 군사기지를 설립했고, 재정 압력 같은 ‘소프트 파워’를 휘둘렀다. 과거 유럽 제국처럼 타국을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냉전의 이익을 얻기 위해 타국을 통제하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미국은 냉전기의 최종 승자가 됐으나 과거 유럽 제국주의에 비해 패권의 역사가 짧았고, 두 가지 면에서 영향력이 제한됐다. 첫째는 안정적인 동맹을 만들려는 의도에서 특정 국가들과 협력한 결과 한국처럼 약소국이 강해지는 일이 생겨났다. 둘째는 베트남 전쟁이나 이라크 침공에서 보듯 미국의 강압적 정책이 더 이상 먹혀들지 않을 만큼 세계의 여러 약소국이 ‘제국’의 지배를 받아들이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홉킨스는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공격적인 관세 정책에 대해 “스스로 발에 총을 쏜 셈”이라고 비판한다. 국제 분업과 자유무역에 기반을 둔 전후 질서를 뒤엎은 ‘공세적인 경제 제국주의’라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는 긴 겨울의 시작점에 있다”며 트럼프가 일정 부분 발을 뺌으로써 ‘구름 사이로 햇빛이 비치기’를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