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롭게 보이는 마을의 뒷산 너머 ‘리바이어던’의 육중한 몸집이 묵직하게 드리워져 있다. 마을 사람들은 잠이 드는 베갯머리에서 이런 생각을 떠올릴 것이다. “아, 나의 삶을 에워싸고 있는 것에는 우리 교구의 목사님, 나의 왕 이외에도 국가라는 것이 있구나….” 국가라는 정치 공동체에서 살아가야 하는 숙명을 지닌 ‘근대인’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게티이미지코리아 19세기 프랑스 판화가 귀스타브 도레의 ‘리바이어던의 파멸’ 컬러판. 당초 리바이어던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다 괴물이었다. 하지만 토머스 홉스는 국가의 비유로 재정의하기에 이른다.

국가, 마을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스스로 세운 새로운 군주

찰스 1세 처형 2년 후인 1651년, 홉스는 ‘리바이어던’을 출간하고 표지 그림에서 국가의 탄생을 이렇게 시현한다.

17세기 영국 내전 시기를 산 홉스는 조국 잉글랜드가 붕괴할까 봐 끔찍하게 두려워했다. 그는 정치적 소용돌이로 걷잡을 수 없이 빨려 들어가는 잉글랜드를 구할 유일한 길은 강력한 정치권력의 설립뿐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당대의 정치 세력이었던 ‘왕당파’와 ‘의회파’에 결코 자신을 포함하지 않았다. 찰스 1세를 보위하는 왕당파도, 의회를 내세웠던 의회파도, 잉글랜드의 진정한 주권을 옹호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홉스는 철저한 ‘주권론자’ 였다. 그에게 진정한 주권은 왕이나 의회와 같은 현존하는 기관이 보유할 수 없는, 오직 가상적으로 존재하는 그 무엇이었다.

홉스는 이러한 주권의 존재를 ‘리바이어던’에서 정교한 이론적 논증을 통해 ‘국가’라는 이름으로 증명한다. 그리고 국가에 거대하고 압도적인 힘을 부여하기 위하여 성경 욥기에 나오는 바다 괴물 이름인 ‘리바이어던’이라는 별칭을 붙여 준다. 주지할 것은 홉스의 ‘국가’는 현대인들이 떠올리는 관료제로 촘촘히 엮인 그런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리바이어던은 누구인가? 대답을 얻기 위해 그림에서 표현한 그의 육신을 자세히 살펴보자.

브리티시 뮤지엄 아브라함 보스가 1651년에 그린 ‘리바이어던’의 표지 그림.

리바이어던의 육신은 마을 사람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홉스는 새 군주 ‘리바이어던’은 오직 마을 사람들이 모두가 몸을 빼곡히 채워 그를 온전한 사람 모양으로 빚을 때에만 홀연히 나타나는 존재라고 말하고 있다.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중단하려면, 잉글랜드인들이 뜻을 모아 단 하나로 통일된 정치적 의사를 만드는 순간에만 현현하는 ‘국가’라는 참된 주권을 세워야 한다고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홉스의 펜 끝에서 완성된 마법과 같은 ‘국가’ 탄생에 대한 이야기는 근 400년이 지난 시대에 살고 있는 나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실감이 나지 않지만, 나는 생명, 재산, 자유를 모두 내어 주면서 나의 국가를 세웠다. 국가는 이미 내 모든 것이 되어 있다. 이렇게 국가라는 운명을 받아들였다면, 그것을 존속하게 하기 위한 몸짓도 나의 몫이다. 아끼고 보살피며 끊임없이 쓴소리를 뱉어내면서, 나의 국가에 대한 간절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애정과 헌신 그리고 높은 결의를 유지하는 몸짓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와 당신이 애초에 모아내었던 그 마음을 다시 엮을 수 있을까. 다시 홉스에게 답을 청하자, 그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법, 주권자와 나를 묶어주는 질긴 끈

‘국가’라는 운명의 사슬로 나를 묶어 놓았던 홉스는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는다. ‘리바이어던’에서 ‘법’을 주권자의 명령이라고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망망대해를 누비는 국가라는 배를 조타하면서 주권자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앞을 향해 촉각의 판단을 내리고, 이를 ‘법’이라는 방향타로 시민들에게 명령한다. ‘법’은 국가를 운영하는 ‘최적의 수’인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가짐이다. 나는 이미 주권자의 명령인 ‘법’에 복종할 마음의 ‘태세’를 갖추었다. 당신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당신과 나는 이미 모든 것을 내어주면서 국가를 만들었고, 법은 이 ‘국가’라는 배를 조타하는 방향타이기 때문이다.

“그들(시민들) 자신의 상호 계약에 의해, 사슬의 한쪽 끝은 주권을 지니게 된 한 사람 혹은 합의체의 입에 연결하고, 또 한 끝은 그들 자신의 귀에 연결하였다.”

‘리바이어던’의 이 어구는 홉스가 심중에 품은 ‘법’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한 무리 앞에 선 주권자 헤라클레스가 있다. 헤라클레스의 ‘입’에는 끈이 연결되어 있고, 이 끈들은 그 뒤를 따르는 사람들 ‘귀’에 연결되어 있다. 목적지로 향하는 험난한 여정에서 헤라클레스는 이 끈을 통해 자신을 따르는 무리에게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전달한다. 이 ‘끈’은 ‘법’이다. 주권자는 정치적 판단과 결정을 ‘법’이라는 ‘끈’을 통해 전달하고, 시민들은 그의 법에 복종하면서 국가에 대한 지속적 애정과 헌신을 되돌려 주는 것이다.

◇오히려 법을 통해 시민의 자유가 실현될 수 있다

그렇다면 헤라클레스를 따르는 무리는 언제나 듣고만 있어야 할까. 그들에게 자유는 허락되지 않는 것일까. 홉스는 오히려 법을 통해 시민의 자유가 실현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이 자유는 그들이 자연 상태에서 누렸던 무절제와 방종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주역이 돼 이뤄낸 국가가 제정하는 법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고양된 상태를 일컫는다. 홉스에게 이러한 ‘시민의 자유’는 오직 실정법이 스스로를 절제하는 공간에서만 구가된다. 오로지 입법가들의 고매한 정치적 판단에서 나오는 입법 절제의 순간에 ‘시민의 자유’라는 꽃은 피어난다.

이경민 전북대 교수·서양정치사상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근대적 통치성을 넘어서’(공저) 등의 연구서를 냈다. 17세기 영국의 법과 정치 개념을 연구하고 있다.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설파한 정치사상가

토머스 홉스(1588~1679)는 잉글랜드 웨스트포트에서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유한 삼촌의 도움으로 옥스퍼드대에 진학했고, 유럽을 여행하며 폭넓은 학문 활동을 펼쳤다. 90세 나이에도 출판을 할 만큼 오랜 활동을 했다.

그의 대표 저서가 ‘리바이어던’(1651)이었다. 자연 상태에서 이기적 본성을 지닌 개인은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을 벌이지만, 결국 개인의 권리를 양도해 주권을 창출하고 사회계약에 의해 ‘국가’를 설립한다고 설명했다. ‘사회계약’이라는 개념은 이후 존 로크에 의해 수용 발전된다. 이경민 교수는 국내 번역본 중 진석용 역본(나남·왼쪽)과 최공웅·최진원 역본(동서문화사·오른쪽)을 추천했다. 유석재 기자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근대적 통치성을 넘어서’(공저) 등의 연구서를 냈다. 17세기 영국의 법과 정치 개념을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