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정치

네드 오거먼 지음 | 김창한 옮김 | 마농지 | 296쪽 | 2만1000원

운동 경기나 콘서트가 끝난 뒤 사람들이 지하철을 타기 위해 한꺼번에 몰려들 때, 내 몸이 의지와 상관없이 인파에 떠밀려 저절로 움직이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 미국 일리노이대 교수이자 정치학자인 저자는 ‘이것은 자유를 잃어버린 상태’라고 비유한다. 그런데 문득 이렇게 소리친다면? “여러분, 이제 떠밀리지 말고 함께 움직입시다!” 이 말은 분명 강요된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선택된 것이며, 그 자체로 정치적 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전체주의의 기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등을 쓴 독일 출신 미국 학자 해나 아렌트(1906~1975)를 언급한다. 아렌트에게 정치란,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것처럼 보이는 수많은 사회적·역사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이처럼 소리를 지르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위에 나서는 것이다. 그리고 자유란 우리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단어라고 말이다.

43세 때인 1949년 촬영한 정치철학자 해나 아렌트의 모습. 그는 정치를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관계 맺는 기술'로 봤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보복과 폭언, 분열과 증오가 난무하고, 상대방을 절멸시켜야만 생존할 수 있는 듯한 정쟁 속에서 ‘정치’란 개념은 권력을 놓고 다투는 권모술수나 이전투구쯤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트럼프 1기 시절에 출간된 이 책(원제 Politics for Everybody)은 아렌트의 정치사상을 길잡이 삼아 새삼 ‘정치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아렌트에게 정치란 특정한 자격을 갖춘 소수의 엘리트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everybody)을 위한 것이었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은 기본적인 인간의 능력, 사유하고 소통하고 행위하는 능력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는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로서 함께 모여 공통 관심사에 대해 말하거나 행위할 때 발생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모든 사람이 개인으로서 억압과 속박을 벗어나 역량을 충분하게 존중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공동체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정치 공동체인 ‘민주주의 체제’ 밖에는 없다. 시장은 개인이 말하고 행위할 권리를 보호해주지 않을 것이고, 기술은 그의 존엄성을 존중하지 않을 것이며, 역사는 개별 인간의 삶을 돌보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따라서 민주주의 ‘정치’를 포기하면 존엄성과 인간다움도 버려지게 된다고 아렌트는 짚었다. 정치는 권력 다툼이나 이념, 제도의 문제기 이전에 사람들의 삶의 질, 행복에 관한 문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정치란 ‘넓은 세계에서 구사하는 자유의 기술’이라고 봤다. 진정한 정치는 오직 자유를 영위할 때만 가능하며, 자유는 오직 정치적 관계 안에서만 실현된다는 것이다. 물론 타인을 억압하거나 보복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동등하게 존중하는 사람들과 비폭력적으로 소통하며 관계를 맺는 행위가 바로 정치다. 정치적으로 산다는 것은 자유롭게 사는 것인 동시에 말과 행위와 판단에 책임감을 가지는 것이다. 공적 행복을 위해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 정치다.

또한 아렌트에게 정치는 ‘수단이자 목적’이다. 어떻게 정치를 피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정치를 더 잘할 것인가가 우리 앞에 놓인 근본적인 질문이다. 결국 정치는 ‘갱신하고 새로운 일을 하는 기술’이다. 나치 독일의 유대인 탄압을 피해 프랑스를 거쳐 미국으로 이주했던 그는, 20세기의 온갖 참혹함을 목도한 끝에 폭력적이고 불공평하며 착취적이었던 집단적 과거가 덫처럼 우리를 옭아매고 있다고 짚었다. 그래서 끝없는 보복 행위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치의 본질에 폭력성이 내재돼 있다고 봤던 홉스나 베버에 비하면, 정치에 대한 아렌트의 해석은 훨씬 더 평화적이고 민주주의적이며 21세기에 어울리는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모두를 위한 정치’가 소통과 대화와 토론을 거치는 동안 많은 시간과 역량이 소요된다는 데 있다. 이것에 답답해할 만한 사람들을 과연 어떻게 설득하느냐는 데 정치 발전의 열쇠가 있는 것이 아닐까. 정치인이라면 처음부터 소통이 불가능한 듯한 사람만 눈에 띄는 환경이라면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