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이아이
김혜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만6000원 | 246쪽
폭력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 김혜빈의 책은 이런 보편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극단적인 폭력의 상황으로 시선을 확장시킨다. 제목 ‘그라이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백발 노파였던 그리스·로마신화 속 세 자매를 지칭한다. 눈과 이가 하나뿐이라 번갈아가며 사용해야 했던 이들이다.
책은 그라이아이처럼 폭력을 마주한 세 여성이 성장하는 과정을 긴장감 있게 그려낸다. 시작은 한국인 여성으로 추정되는 고대 미라 ‘백희’의 머리가 아일랜드에서 발견되는 사건. 백희가 2500여 년 전 왜 한반도를 떠나야 했는지, 몸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이를 계기로 두 여성이 아일랜드를 찾는다. 백희를 취재하는 방송 작가 ‘주나’와 미라 연구자의 딸 ‘영’은 가족에게 평생을 외면받았고, 친구·연인 등과 제대로 된 관계를 맺지 못했다.
소설의 묘미는 백희가 자신의 몸을 찾아 돌아다니는 대목. 동시에 과거 회상이 교차되며, 손가락이 여섯 개인 채로 태어난 그가 겪은 폭력이 드러난다. 잘린 몸과 머리는 “품위가 폭력에 의해 폄하되지 않는 세상을, 수많은 비관에도 사라지지 않는 낙관을 꿈”꿨던 백희의 강력한 의지가 투영된 결과였다.
올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작가의 첫 소설로, ‘박화성소설상’을 받으며 출간됐다. 여성 작가 최초의 신문 연재 장편소설 ‘백화’를 쓴 故(고) 박화성(1904~1988)을 기리는 상. “복화술사 같은 환상적 이야기꾼의 가능성을 실험한다”(우찬제 문학평론가)는 평처럼, 작가가 구축한 환상적 세계가 돋보이면서도 ‘폭력’이란 주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