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에 반의 반

반에 반의 반

천운영 지음 | 문학동네 | 300쪽 | 1만5000원

단편 ‘아버지가 되어주오’는 한 부부의 이혼 장면에서 시작한다. 법원, 구청을 들러 이혼한 다음 중식당에 들어서니 세 자식까지 있다. 알고 보니 세금을 아끼려는 위장 이혼. 장녀인 ‘나’는 평생 희생하며 산 어머니가 눈에 밟힌다. 이왕 정리한 김에 갈라서라고 아버지를 쏘아붙인다. 그런데 어머니는 저녁 자리가 끝난 다음 ‘나’에게 묻는다. “넌 네 엄마 인생이, 그렇게 정리되면, 좋겠니?”

부부는 인쇄소에서 일하다 만나, 결혼 전에 ‘나’를 가졌다. 아버지보다 아홉 살 어린 어머니는 순천에서 여고를 졸업한 다음 혼자 상경했다. ‘나’는 둘의 만남과 자신의 출생이 어머니가 고생하기 시작한 때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 순간은 어머니에게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남양(孃)’이라던 그를 처음으로 이름 ‘명자’로 불러준 게 아버지다. ‘나’는 어머니의 인생은 희생이 아니라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음을 깨닫는다. 어머니가 외할아버지에게 배운 사랑은 타인을 묵묵히 보듬는 ‘아버지’의 사랑이었다.

2000년 등단해 장편 두 권과 소설집 네 권을 낸 천운영이 10년 만에 펴낸 소설집. 취재를 바탕으로 한 사실적 묘사는 여전하나, 상상을 통해 그려내는 따뜻한 풍경이 인상적이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속치마만 입고 계곡에서 물놀이하던 장면을 상상하는 표제작이 대표적. 할머니가 왜 옷을 벗었는지, 얼마나 물에 있었는지는 실체가 밝혀지지 않는다. 다만 그날의 증언에 상상력을 약간 보태 할머니 모습을 환하게 그려낸다. 많은 이에게 가족은 가까우면서도 먼 존재일 것이다. 단편 8편은 ‘반에 반의 반’만큼의 상상력으로 가족을 이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