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세이사

요나하 준 지음 | 이충원 옮김 | 마르코폴로 | 648쪽 | 3만7000원

“맑은 하늘 아래 짙은 안개가 자욱했다. 이것은 헤이세이(平成) 시대 일본 사회를 돌아볼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다.” 이 책은 아키히토 일왕의 재위 기간인 헤이세이 연간, 그러니까 1989년부터 2019년까지 30년의 일본 현대사(史)다.

1979년생 역사학자인 저자는 당대사(當代史)에 가까울 것 같은 이 책의 시대를 ‘그조차 멀어져 버린 과거’라 말한다. 얼핏 편년체 연대기 같지만 깊은 인문학적 성찰 위에서 유려한 문장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종횡으로 넘나들며 역사를 서술한다. 2013~2014년을 놓고 보면, 막 수립된 제2차 아베 정권, 경기 회복을 위한 리플레 정책 실패, 아이돌 그룹 AKB48,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바람이 분다’를 연결해, 점차 역사를 망각하고 보수화하는 일본 사회의 큰 그림을 그려낸다.

저자는 이렇게 본다. 베를린 장벽 붕괴와 함께 시작된 헤이세이는 좌(마르크스주의)와 우(쇼와 일왕)의 두 아버지를 잃고 난 뒤 새롭게 열린 시대였다. 하지만 끝내 좌표와 활력을 잃은 채 ‘역사의 소멸’을 맞은 공허한 시대로 귀결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코로나 이후의 일본이 더 이상 쇠퇴를 막을 수 없는 나라가 됐다는, 그들로서는 몹시 우울한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