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 과정
조문영 지음 | 글항아리 | 428쪽 | 2만4000원
저자는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로 20년 동안 빈곤(貧困) 문제를 깊이 연구해 왔고, 무허가 판자촌과 공장지대, 슬럼화된 노동자 거주지 같은 현장에서 빈자들의 생활을 지켜봤다. 그리곤 빈자가 아닌 사람들이 우월한 입장에서 빈곤을 ‘잘못된 상태’로 바라보는 것을 불편해한다. 빈자 역시 주어진 조건이 어쨌든 세계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는 점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다는 것이다.
이 책은 빈곤이 복지와 결합하면서 오히려 빈자에 대한 낙인을 찍는 결과를 낳았다고 분석한다. ‘의존’이라는 하나의 존재 양태를 문제시하는 빈곤 통치, 빈곤 산업이 자리 잡으면서 ‘노동 대 빈곤’의 이분법에서 후자의 열위(劣位)가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빈곤의 실상을 자세히 알리려는 시도는 새로운 편견과 낙인을 가져올 수 있다.
저자는 빈자의 의존을 자립 상태로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그가 어떤 인간인지’ 관심을 가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나라는 내가 진정으로 어떤 인간인지 알려 하지 않는다”는 어느 청년 노동자의 토로는 이 지점에서 울림을 갖는다. 별 볼일 없는 일상을 함께 견디며, 그럼에도 누구든 지금보다 더 나은 ‘세계 내 자리’를 확보할 자격이 있음을 서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