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에필로그

프롤로그 에필로그

정영문 지음 | 460쪽 | 문학동네

소설은 “긴 말 할 것도 없이 이 소설은 하나 마나 한 이야기”라는 스포일러로 시작한다. 400쪽이 넘는 소설에 대한 설명치고 빈약해 보였는지, 한마디 덧붙인다. “캐나다 밴쿠버와 다른 곳들을 배경으로 한 하나 마나 한 이야기”라고. 실제로 이야기는 소설가인 화자의 경험과 생각을 말하는 것이 전부다. 해변가에 주인 없는 발들이 발견된 사건을 접하고 그것을 소설로 쓰기로 결심하다가, 발의 주인을 찾는 일과 운동화 등에 대한 생각을 늘어놓는 식.

계속해서 옆으로 이야기가 새는 소설에서 유일한 규칙은 ‘한 문단에 한 문장 쓰기’다. 한 문장의 길이가 네 페이지에 달하는 문단에서 그 이유를 엿볼 수 있다. “긴 문장을 쓰고 싶은 유혹 때문도 아니고, (…) 내가 옆으로 새는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일종의 ‘놀이’로서 이런 방식으로 쓴다는 고백은 소설의 서사를 파악하려는 독자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마침표가 아닌 쉼표로 이어지는 문장의 리듬을 벗삼아 책장을 넘기다 보면, 하나의 메시지에 도달하게 된다. 삶에 핵심이 없듯, 그것을 글로 쓴 소설에도 핵심이 없다는 것. 소설의 앞(프롤로그)과 끝(에필로그) 사이에 들어갈 의미 있는 이야기는 없다는 것이다.

작가가 한 해에 한무숙문학상,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을 동시에 받은 소설 ‘어떤 작위의 세계’ 이후 11년 만에 낸 장편이다. 소설은 기승전결과 같은 매끈한 서사로 흘러가지 않는 현실을 지독하게 반영하고 있다. 다음 문단을 상상하며 읽기 보다는 글에 한번 몸을 맡겨보자. 불편과 긴장은 점차 사라지고, 어느 순간 피식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