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에 대해 말할 때
김경욱 | 문학과지성사 | 302쪽 | 1만4000원
“너는 누구냐”는 질문에 이름을 말하면 분위기를 망치기 십상이다. 갓생(God+生·모범적인 삶), 성격 유형 검사 MBTI 열풍이 식지 않는 이유다. ‘나다움’을 강요받는 시대다. 우리는 그런 상황에 대비해 수많은 ‘나’를 준비한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나’의 정체성이 정말 ‘나’일까. 소설집은 ‘나’에 대해 말하는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나’를 찾는 여정과도 같다.
표제작 속 화자는 ‘김중근’의 비밀에 대해 말한다. 김중근은 화자의 이름이다. 그는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메스꺼운 느낌이 들어서, 자신의 일을 김중근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부모의 뜻에 따라 아버지 대신 감옥에 갔었다. 그날의 잔상이 이름 중근(重根·무거운 뿌리)처럼 가슴속에 박혀 있다. 세상에서 도망친 화자는 자기 자신과도 거리를 둔 채 살아간다.
소설집엔 그동안 김경욱이 쓰지 않았던, ‘소설가 소설’이 두 편 등장한다. ‘그분이 오신다’는 글이 잘 써지지 않는 한 중견 소설가의 고군분투를 담았다. ‘이것은 내가 쓴 소설이 아니다’는 ‘그분이 오신다’를 자신이 쓰지 않았다고 반박하는 등단 29년 차 소설가의 이야기다. 이 소설가들은 올해로 등단 29년 차인 김경욱과 닮았으면서도 다른 존재다.
소설집에 묶인 ‘나’에 대한 소설 9편은 독자를 바다 한가운데에 떨어뜨린다. “자신이 심연을 들여다본다고 여겼는데 심연이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어느 ‘나’의 고백처럼, 책을 보는 이들에게 “너는 누구냐”고 끊임없이 질문한다. 답을 내놓지는 않는다. 다만, 수많은 ‘나’가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