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지장례법

습지장례법

신종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92쪽 | 1만4000원

늪에서 누군가 말을 건다. “조심해요. 당신은 지금 물가에 서 있어요.” 발밑에 보이는 수많은 주검들. 눈을 감고 있지만 이목구비가 닮았다. 이들은 모두 한 집안 사람들. 오랜 풍습에 따라 수장됐다. 소설 속 ‘당신’은 장례 풍습을 이어갈 마지막 사람. 어느 날 걸려온 전화에선 물소리만 들린다. 그 소리에 이끌려 늪을 찾는다.

소설은 ‘당신’이 할아버지의 죽음을 15년 만에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린다. 임종, 수시, 안치, 발상, 삼우라는 장례식 절차를 목차로 삼았다. 그러나 과거를 답습하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다시는 여기 내려오고 싶지 않았어요. … 천년의 핏줄을 이어가지 않을 것이고, 당신의 자손으로 남지 않을 것입니다.” 물속에서 각자의 삶을 회고하던 영혼들이 그제야 한목소리로 노래한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2020년 등단한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소설은 작가 자신의 삶과 맞닿아 있다. 작가는 글을 쓰게 된 일화를 소개하며 소설을 마무리한다. 수화기 너머 물소리가 들린다. 할아버지를 늪에 수장한 그날이 떠오른다. ‘할아버지께 마지막으로 전할 말을 하라’는 늪지기의 요청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날. 작가는 비로소 이번 소설을 통해 못다 한 말을 전한다. “나는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썼다. … 할아버지. 우린 이제 자유로워요.”

자전적 소설이지만 한 개인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과거를 무작정 따라 하거나 부정하는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대로 된 미래는 과거를 능동적으로 이해한 다음, 그 바탕에서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