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R
전경린 소설집 | 문학동네 | 304쪽 | 1만4500원
표제작 속 화자는 더이상 소설을 쓰지 못한다. 쓰다 만 소설 속 인물 R이 꿈에 계속해서 나온다. 악몽에서 벗어나려 발리로 향한다. 보통의 여행객과는 다르다. 돈을 쓰라는 숙소 주인의 여행지 추천에도 허름한 숙소와 그 주변을 서성인다. 대신 그곳에서 만난 한 여성에게서 흥미를 느낀다. 아이를 잃은 뒤 전 남편을 찾아 온 ‘호연’.
“나는 모든 여자에게서 R의 일부를 발견했다.” 화자는 여행지에서 만난 여자들의 모습에서 R을 본다. 호연뿐 아니라 R과 정반대 성격의 인물조차 그와 일부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어느덧 자신이 고통받았던 R의 꿈에서 벗어나게 된다. 화자는 여행지로 돌아오기 직전, 편지를 적는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여행을 떠나겠지요. 누군지 모르겠지만 당신의 여행을 응원합니다.”
‘나 자신이 누군인가’라는 고민을 계속해서 하게 되는 시대. 하나의 단어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로부터 위로를 얻을 수 있다. 문학동네소설상, 이상문학상 등을 받은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 치열한 사랑이 지나간 뒤의 풍경들을 다룬다. 이혼을 했거나, 가족을 떠나보낸 여성들이 혼자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쓸쓸한 이야기들이지만, 어딘지 따뜻한 이유는 작가의 진심이 담겨서다. 작가는 “그동안 참 많은 소설을 썼다. 내 소설의 화자들이 여기 이 현실에 산다면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 나의 화자들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라고 ‘작가의 말’에 밝혔다. 무더운 여름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보며 ‘수고했다’는 위로를 한번 건네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