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태종 이방원(상·하)

이한우 지음 | 21세기북스 | 624·692쪽 | 각권 3만8000원

태종평전

박현모 지음 | 흐름출판 | 368쪽 | 2만2000원

고려의 가을

김영수 지음 | 도서출판 포럼 | 676쪽 | 3만5000원

‘살인의 리스트’가 조선 3대 임금 태종 이방원(1367~1422, 재위 1400~1418)처럼 길고도 다채로운 군주는 한국사에서 드물 것이다. 고려의 마지막 충신 정몽주부터 새 왕조의 설계자로 나섰던 정도전, 이복동생인 이방석과 이방번, 처남 민무구 사형제, 아들 세종의 장인인 심온까지, 그와 정적(政敵)이었거나 비슷한 구도를 이뤘던 사람들은 모두 목숨을 잃었다. 장남 양녕대군은 세자 자리에서 내쳤고 측근 이숙번마저 귀양을 보냈다.

그러나 때로 역사는 그렇게 잔인해 보이는 자들에 의해 새 질서로 나아가기도 한다. 결국 조선왕조는 그 피를 딛고 일어난 셈이니 말이다. 재위 기간이 6년뿐이었던 태조 이성계가 사실상 개국에서 업적이 그쳤다면, 공신과 외척 세력을 누르고 왕권을 강화하며 제도를 정비해 500년 왕조의 기틀을 잡았던 군주가 바로 태종이었다.

그 태종을 분석한 책 세 종이 동시에 출간됐다. ‘이한우의 태종 이방원’은 태종실록을 새로 번역하는 등 오래도록 태종을 연구한 언론인 출신의 저자가 그의 삶과 내면 세계를 총체적으로 분석했다. ‘태종평전’은 세종 전문가로 알려진 박현모 여주대 교수가 이번엔 아버지 태종의 리더십을 파고들었다. 여말선초의 정치사를 연구한 김영수 영남대 교수는 당대의 인물과 사상을 짚은 ‘고려의 가을’에서 태종을 비중 있게 다뤘다.

태종의 키워드가 ‘지공(至公·지극히 공정함)’이라고? 이한우의 책에서 묘사하는 태종은 대중의 막연한 상식을 훌쩍 벗어난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준다. 태종은 군주로서 언행에 있어 일관되게 ‘지공’을 추구했고, ‘공’에 거스를 때는 친족이든 공신이든 단호하게 척결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도리를 거슬러 나라를 차지했다’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다스림에 있어서 탁월함을 보여 줬던 요체였다는 말이다.

조선 3대 임금 태종 이방원은 공사(公私)를 철저히 구분해 공신과 외척을 누르고 왕권을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은 1997년 KBS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 이방원 역으로 출연한 유동근.

이한우는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군군신신·君君臣臣)’는 ‘논어’의 말에서 공자의 원래 사상이 왕권중심주의에 있다고 본다. 이를 철저히 소화한 태종은 종묘사직을 위해서라면 친족·공신들과의 갈등도 꺼리지 않았고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았다. 반면 주희의 신권중심주의 사상을 어설프게 받아들인 정도전은 패했다. 태종이 외척을 그렇게까지 탄압했던 것은 지나친 게 아니냐는 의문에 대해선, 정조가 아들 순조의 왕비 집안을 안동 김씨로 결정하면서부터 ‘외척의 나라’가 된 조선이 이후 얼마나 기울었는지 보라고 말한다.

박현모의 책은 태종의 장점과 한계에 대해 냉철하게 짚는다. 분명 그는 위기 경영이라는 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마치 호랑이 등에 올라탄 사람처럼 과감하면서도 신속하게 일을 추진하는 데 뛰어났다는 것이다. 아들 세종이 평가한 것처럼 ‘기강을 세워서 일이 잘 돌아가도록 만드는’ 리더십, 즉 유능한 인재를 적소에 배치해 조직이 스스로 움직에게 했다. 그 목표 달성을 위해 말[言]의 질서를 바로잡고, 일의 순서를 세웠으며, 다양한 인재풀을 마련했다.

그러나 태종의 명백한 한계도 지적한다. 그는 정치와 역사를 기능적인 차원에서만 이해했고, 종종 신하들을 왕의 조력자 아니면 훼방꾼으로만 인식했다. 자신에 대한 비판을 참지 못하고 모든 인재를 자기 밑에 가두려고 했다. 왕의 총애를 받는 사람들만 우대받는 상황에서 과연 창의력 있는 인재가 나올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태종이 세종을 뛰어넘지 못한 이유’였다.

김영수는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는 니체의 말을 인용하며, 정치가로서 태종의 미덕은 ‘정치를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여 헌신한 데 있다고 짚는다. 정치적 문제의 해결책을 종교 등 정치 외적인 것에 의존하지 않고 늘 정치 안에서 찾는 모범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분명 잔인하고 반인륜적인 행동을 했으며 사람을 불신했기 때문에 우정을 나눌 친구조차 없었으나, 그것은 그의 인간성이나 권력욕의 소산이라기보다는 국가에 대한 헌신에서 나온 산물이라고도 이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치가의 잔인성은 인간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말이 맞는다면, 태종은 폭력이 횡행하던 여말선초의 상황에서 벗어나 평화적인 정치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폭력을 택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