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세계 질서의 종막 | 김기혁 지음 | 김범 옮김 | 글항아리 | 448쪽 | 2만5000원

일제 말 학병으로 끌려갔다 탈출한 한 인사는 ‘우리는 절대 나라를 뺏겼던 못난 조상처럼 되지 말자’고 수없이 다짐했다고 한다. 이 책은 ‘그 못난 조상은 과연 언제 어떤 국제적 상황에서 실책을 했는가’란 의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 1860년에서 1882년까지 조선을 국제 세계로 이끈 중국과 일본의 정책과 행동이 동아시아의 종전 세계 질서에 끼친 영향을 탐구한 책이다.

청의 조공국이던 조선이 새로운 질서 속에서 국제사회 일원으로 변모한 과정은 ①병인양요·신미양요 등 열강의 탐색이 벌어지던 시기 ②1876년 일본이 조선과 강화도 조약을 맺으며 팽창주의로 나아간 시기 ③1882년 조선이 미국·영국과 조약을 맺을 때까지 청나라가 이전 질서를 탈피하며 조선 문제에 개입한 시기로 단계를 나눌 수 있다. 주변국의 정책이 급변하는 이 숨 가쁜 기간, 국수주의에 빠져 세계에서 고립됐던 조선은 서양을 배척하고 일본을 경멸하며 청나라마저 한심하게 보고 있었다.

저자는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를 지낸 동양사학자 김기혁(1924~2003)이다. 역자(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는 “세계사적 관점에서 조선의 위치를 냉철하게 평가하며 과대 포장을 자제하면서도 자학 사관에 빠지지 않은 연구서”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