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승리 /뿌리와이파리

불안한 승리

도널드 서순 지음 | 유강은 옮김 | 뿌리와이파리 | 1088쪽 | 5만5000원

“자본주의는 (개별 국가와는 달리) 거대한 단일체가 아니고, 중심이 없으며, 경쟁 관계를 유발하고 경쟁을 바탕으로 번성한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지구 전체에 뻗어나갈 수 있다.” 일견 자본주의의 세계사적 ‘승리’를 말하는 듯한 이 책은 “아이러니한 것은 자본주의의 승리 자체가 오늘날 그 미래를 위협하며 한때 불타오르게 만든 장작이 다 소진돼 소비의 승리가 소비의 창조자를 무너뜨릴지 모른다”며 그 ‘불안’한 상황을 경고한다.

에릭 홉스봄의 제자로 영국 런던대 명예교수인 저자는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1860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14년까지 ‘세계화’를 달성한 자본주의의 역사를 추적한다. 산업혁명과 대량생산, 거대 소비시장·교역망의 구축보다 훨씬 광범위한 변화가 일어났다. 교통망·전신·우편 같은 기반 시설, 도시로 몰려든 노동자, 그로 인한 사회문제 해결, 조세 정책과 치안·행정 확립에서 민족 공동체 건설, 식민지 수탈까지도 자본주의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그 당시 카를 마르크스가 한탄했던 ‘과로에 시달려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서구 노동자’들은 이제 권리를 갖추고 번영을 누리는 시민이자 소비자가 됐다. 여전히 존재하는 빈민들도 더 이상 자본주의 탓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계급투쟁이나 혁명의 열망 대신 기후변화라는 이름의 생태적 한계가 가장 큰 장애물로 다가오고 있다. “만성적 불안정은 체제의 결함이나 우연한 부산물이 아니라 자본주의 발전의 토대”라는 말은 자본주의야말로 끊임없는 ‘채찍과 질정’이 필요한 체제임을 암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