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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 뱀수리가 뻐끔살무사를 포식하고 있다. /Latest Sightings Youtube Capture

음습한 숲속을 스르르 몸뚱이로 기어다니던 뱀이 창공을 향해 날아올랐습니다. 푸른 하늘 아래 강과 산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뱀에게 날개가 돋은 것일까요? 이무기가 돼서 승천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이 뱀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비행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뱀의 비행은 자의가 아니거든요. 황조롱이에게 낚아채여 둥지로 끌려가고 있는 중입니다. 미국 어류야생동물보호국이 최근에 이 장면을 포착한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화제입니다. 가슴팍을 포식자에게 움켜쥐인채 뱀의 머리는 뒤를 향해있습니다. 작은 덩치임에도 불구하고 숲과 늪의 포식자로 살아온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고 있을지 몰라요. 그 똘망한 눈망울을 구슬리며 이렇게 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삶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안녕 세상이여...”

황조롱이가 뱀을 채 둥지로 날아가고 있다. /USFWS Southeast Region Facebook

움켜진 발톱을 극적으로 빠져나가지 않는한 가련한 뱀이 어떻게 될지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성질머리 급한 맹금류들은 먹잇감의 혼이 빠져나가길 절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곧 가녀린 뱀의 몸뚱아리는 마트에서 파는 진미채처럼 북북 찢길 겁니다. 꾸불텅대는 덩어리의 몸뚱아리는 새끼들의 뱃속으로 들어가거나 어미나 아비의 식사거리로 소비되겠죠. 이 상황에서 뱀이 바랄 수 있는 유일한 소원이라곤 고통이 최소화되도록 통째로 삼켜지는 것뿐일테죠.

아프리카와 인도에 사는 검은따오기가 뱀을 통째로 후루룩 삼키고 있다. /Kaylan Acharya/VCG. People'd Daily, China Facebook

뱀은 천성적인 포식자입니다. 전세계 분포하고 있는 모든 뱀들은 살아있는 먹잇감을 사냥해 죽이거나 산채로 삼킵니다. 극히 일부가 개구리알이나 새알을 삼키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런 뱀들이 생태계에서 포식자로서의 기능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유독 새 중에는 먹잇감으로 뱀을 선호하는 놈들이 많습니다. 국숫가락 처럼 후루룩 부릿속으로 넘기기도 하고, 산채로 버둥거리는 몸뚱이를 조각내기도 하고, 이미 혼이 빠져나간 몸뚱이를 쾅쾅 짓밟아 납작하게 만든 다음에야 꿀떡 삼키기도 합니다. 지금 이순간에도 뱀들은 새들에게 어딘가에서 살육돼 몸뚱이는 모이주머니에서 탈곡기처럼 탈탈 털리고 있을 것입니다. 생태계를 떠받들어주는 뱀들의 희생에 경의를 표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플로리다의 늪지대에서 흰따오기가 뱀을 건져올려 삼키고 있다. /Everglades Holiday Park Facebook

맹금류중에는 뱀에 대한 집착이 유난히 두드러진 족속이 많습니다. 그래서 아예 이름에 ‘뱀’이 붙은 경우도 있어요. 바로 갈색뱀수리(Brown Snake Eagle)입니다. 동부와 남부 아프리카에 폭 넓게 퍼져 사는 이 수리는 덩치는 여느 수리에 비해 크다고 할 수 없지만, 지구상 어느 짐승보다도 뛰어난 뱀 사냥꾼이라고 할만합니다. 그 먹잇감이 블랙맘바와 함께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무시무시한 독사인 퍼프 애더(일명 뻐끔살무사)라도 해도 괘념치 않습니다. 갈색뱀수리가 퍼프애더를 먹는 동영상(Latest Sightings youtube) 한번 보실까요? 참고로 댓글에 ‘생전 처음으로 뱀이 불쌍하다고 느껴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거칠고 잔혹한 장면이 있으니 예민하신 분들은 건너뛰시길 원합니다.

살무사를 산채로 뜯어먹는 갈색뱀수리의 모습. /유튜브

이 갈색뱀수리는 경험이 축적된 노련한 사냥꾼이자 미식가예요. 야들야들하고 기름기가 흐르는 내장이 최고 맛있는 부분이라는 것도 알고 있죠. 굳이 숨통을 끊지 않아도 좋아하는 부위부터 먹을 수 있는 노하우를 발휘합니다. 그 결과 뱀으로서는 이보다 더 끔찍할 수 없는 생의 결말을 맞게 됐습니다. 날카로운 발톱으로 뱀의 몸통을 움켜쥐었습니다. 아무리 버둥거린들 어쩔 수 없는 구도입니다. 그리고 연약한 복부를 공략하면서 잔혹한 식사가 시작됩니다. 뱀은 울림통이 없기에 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그래도 고통속에 절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내 몸을 너에게 내어줄 테니, 제발 고통이 없도록 숨통부터 끊어달라”는 외침은 아닐까요? 뱀의 몸뚱이는 핏빛으로 거칠게 파헤쳐지고, 몸부림치던 움직임은 조금씩 잦아듭니다. 그렇게 대지에서 온 뱀이 다시 대지로 돌아갑니다. 다음 세상엔 고통없는 곳에서 태어나길 바랍니다.

뱀에 탐닉하는 맹금류로 어찌 뱀잡이수리를 빼놓을 수 있을까요? 세상에 정말 많은 뱀사냥꾼이 있지만, 이 놈처럼 경쾌하고 발랄하게 뱀을 잡는 짐승은 없을 겁니다. 피한방울 나오지 않고, 쿵쿵따디 쿵쿵따 탭댄스만으로 사냥을 마무리합니다. 뱀잡이수리의 뱀사냥은 간단합니다. 밟고 밟고 또 밟고 또 밟습니다. 그 쉴새없는 스텝에 뱀의 머리통이 박살이 나고, 뇌와 심장은 터지고, 위는 파열됩니다. 한바탕 죽음의 탭댄스가 끝난 자리에 너절해진 몸뚱아리가 육포처럼 널브러져있죠. 불과 1분 남짓한 시간에 뱀잡이수리가 뱀을 밟아죽이고 빛의 속도로 국수가락처럼 먹는 장면(Frederick Harshbarger youtube)입니다.

맹금류만 뱀을 즐겨 먹는건 아닙니다. 따오기하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나요?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이라는 동요가사와 함께, 창녕 우포늪에서 복원사업을 통해 꾸준히 숫자를 늘리고 있는 아담한 덩치의 물새 따오기가 먼저 떠올려지지는 않나요? 이는 따오기라는 족속의 극히 일부분일 뿐입니다. 먹성 좋기로 악명높은 물새들인 사다새·가마우지와 분류학적으로 한통속이라는 점을 잊으면 안됩니다. 그저 덩치가 좀 왜소할 뿐, 따오기는 구부러진 부리를 쉴새없이 휘두르는 죽음의 사냥꾼 중의 하나입니다. 특유의 부리 모양으로 어렵지 않게 구분할 수 있는 따오기는 사는 곳에 따라서 깃털 색깔이 천연색 물감처럼 다채롭습니다. 위는 검은 따오기(Nature Mania youtube), 아래는 흰따오기(Modern Texas Naturalist youtube)의 사냥 장면입니다.

그 중에 숯처럼 검은 머리가 인상적인 아프리카의 검은 따오기와 정반대의 몸색깔을 한 아메리카 대륙의 흰따오기는 뱀없이는 죽고 못사는 뱀사냥꾼입니다. 이들에게 잡힌 뱀들은 밟혀죽거나, 찢겨죽는 것 이상으로 고역을 겪습니다. 갈고리 같은 부리에 매달려서 빠져나가기 위해 온갖 발버둥을 치기 마련이에요. 하지만, 앙다문 부리는 이들을 결코 놓아주지 않습니다. 살기 위해 버둥거리는 몸짓이 순간 누그러질때즘 찰나를 놓치지 않고 목구멍으로 넘겨버립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장엄한 죽음이라고 할수 있겠죠.

수리·매와 함께 맹금류의 쌍벽을 이루는 올빼미·부엉이. 왕성한 먹성으로 늪지의 괴수로 군림하는 왜가리. 방울뱀 머리통을 물고 바닥에 내리꽂는 기괴한 사냥습성을 발휘하는 길달리기까지.... 정말 많은 새들이 뱀을 주식으로 삼습니다. 지금도 세상 어느 곳에서는 뱀이 먹고 있을 것이고, 또한 먹히고 있을 것입니다. 생태계를 든든하게 떠받치는 이 매혹적이고 가련한 파충류를 징그럽다고 손사래치지말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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