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65

이별의 순간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어서일까요. 한국에서 처음 태어난 판다 푸바오에 대한 인기가 식을 줄 모릅니다. 익숙한 부모와 사육사 품을 떠나 낯선 곳으로 보내야 한다는 애틋함 때문이겠지요. 중국으로 건너간 푸바오가 판다족의 대를 잇기 위해 맞이할 신랑이 누가 될지도 궁금해집니다. 이와 관련해 혹시 저 녀석은 어떨까, 싶은 수컷 판다 한마리가 있답니다. 바다건너 미국 워싱턴DC 스미스소니언 국립동물원에 살고 있는 세살박이 샤오치지입니다. 성별만 다를 뿐 태어나 지금까지 지낸 이력이 어쩌면 이렇게 빼닮을 수 있을까요? 샤오치지는 2020년 8월 21일 생입니다. 푸바오보다 한 달 늦게 태어난 동갑입니다.

워싱턴DC 스미스소니언동물원에 살고 있는 스물다섯살 암컷 판다 메이샹. 최근 아들 샤오치지를 독립시켰다. /Smithsonian's National Zoo

푸바오처럼 떠들썩한 생일잔치를 했어요. 숫자 3을 테마로 한 아기자기한 조형물을 두고 녀석은 한참을 이리 보고 저리 보며 호기심을 발산합니다. 이 생일잔치가 기쁜 동시에 서글프다는 점까지도 빼닮았어요. 샤오치지 역시 내년에 중국으로 돌아갈 예정이거든요. 하지만 친부모와 생이별해야 하는 푸바오와 달리, 샤오치지는 엄마 메이샹(25살)과 아빠 톈톈(26살)과 함께 돌아갈 예정이라고 하네요. 그렇다 한들 이들은 인간의 방식대로 가족을 이루거나 안부를 묻는 일 없이, 곰과 짐승의 일원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영위하겠죠.

세살된 수컷 판다 샤오치지가 생일상을 받고 있다. /Smithsonian's National Zoo

2000년부터 스미스소니언 동물원에 살기 시작한 메이샹과 톈톈 부부는 그동안 여러 차례 번식을 했고, 이 중 네 마리가 살아남았는데 그 막내가 샤오치지예요. 가족의 스포트라이트는 당연히 샤오치지에게 쏠릴만도 한데,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스미스소니언 동물원이 최근 때 아니 늦바람으로 동물원 사람들을 안달나게 했던 어미 메이샹의 이야기를 공개했습니다. 판다는 야생에선 15~20년, 동물원에서는 30년정도까지 삽니다. 올 7월 스물다섯번째 생일상을 받은 메이샹은 그러니까 사람으로 치면 시니어 오브 시니어급입니다. 왕할머니란 얘기죠. 그런데 별안간 나이를 거꾸로 먹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우선 지난달 생일을 맞은 샤오치지의 축하 동영상(Smithsonian’s Zoo Youtube) 잠깐 보실까요?

상황은 이렇습니다. 3년전 꼬물딱거리는 자그마한 갓난새끼 샤오치지를 낳은 메이샹은 이후 꼬박 품에 안고 돌봤습니다. 하지만 올 초 모자(母子)가 함께 사는 우리에는 전과 다른 기운이 흘렀습니다. 어미를 껌딱지처럼 졸졸 따라붙던 샤오치지가 부쩍 혼자 행동하는 모습이 늘어났습니다. 그런 아들의 변화를 바라보는 메이샹의 모습도 무심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부쩍 덩치가 커진 아들의 장난기 섞인 몸짓에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며 면박을 주고 쫓아내거나 피해서 도망치는 듯한 모습까지 포착됐습니다. 눈빛에는 ‘저리 X져. 이 징글징글한 놈아’라는 냉기까지 느껴질 정도였죠. 더 이상 가족의 온기가 흐르지 않는 암컷과 수컷 곰이었죠. 이제 이별의 순간이 온 거죠. 올해 2월 둘은 그렇게 분리됐습니다. 탁 트인 야생에선 결별이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공간이 한정된 동물원에서는 세심하게 분리를 시켜줘야 합니다. 메이샹의 최후의 육아가 그렇게 끝났어요. 몰라보게 싸늘해진, 이별을 앞둔 판다 모자의 일상을 담은 동영상(Smithsonian’s Zoo Youtube)입니다.

이 나이 또래의 판다들은 대개 관절염이나 고혈압 등을 앓고 있죠. 메이샹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이제 사육사들의 돌봄을 받으면서 편안하게 여생을 즐기는 일만 남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교태전의 상궁과 내시들처럼 1년에 고작 하루만 허락된 메이샹의 합궁날짜를 헤아리고, 임신과 분만 등을 책임져주던 전담 팀도 이미 해체됐고요. 그런데, 3월이 되자 메이샹의 행동에 변화가 생겼어요. 우선 우리 바깥을 활발히 돌아다니지 않고,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안에서 뒹굴대며 하루를 보내는 일이 잦아졌어요. 하루 중 잠을 자는 시간도 부쩍 늘어났고요. 판다는 대개 먹고 자고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데 자는 시간이 늘어나다보니 먹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이런 증상을 나타내자 사육사들과 수의사들 사이에서는 ‘설마~?’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메이샹에의 몸에서 호르몬 샘플을 검출해 측정했더니, 에스트로겐의 수치가 확연히 가파른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가임기 암컷 판다에게 1년 딱 36시간만 허락된다는, 그래서 순조로운 합궁을 위해 동물원 사람들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기다리던 그 시간이 도래한 것이죠. 대개 짐승 암컷들은 기르던 새끼와 분리되면 신체는 다시 짝짓기를 할 준비로 접어듭니다. 이성이 아닌 생체적 본능에 의한 신진대사죠.

수사자가 다른 수컷의 혈통으로 보이는 새끼를 물어죽이는 모습. /WildEarth Youtube 캡처

이 메커니즘이 가장 잔혹하게 드러나는 짐승 족속이 바로 사자입니다. 내부 쿠데타든, 외부 침입이든 사자 우두머리가 무력으로 퇴출되고 나면, 점령자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자신들이 쫓아낸 전 우두머리의 핏줄을 타고 난 어린 사자들을 죽여버리는 것입니다. 이 새끼들이 제거돼야 암컷에게서 모성이 제거되고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릴 수 있기 때문이거든요. 초식동물의 제왕 격인 하마, 그리고 얼룩말도 갓 태어난 새끼들의 가장 무서운 천적은 다름아닌 호시탐탐 자신의 어미를 노리는 수컷들입니다. 새끼 하마가 욕정에 불타는 성체 수컷의 이빨에 온몸이 산산조각나고, 새끼 얼룩말이 탐욕에 눈먼 얼룩말 수컷의 발길질에 혼비백산하는 비극적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하마 수컷이 세력 다툼 중 입에 새끼를 물고 공격하고 있다. /Peter Geraerdts Youtube 캡처

이들과 판다를 같은 경우로 볼 수야 없겠지만, 본능에 좌우되는 짐승이라는 본질에선 다를 바 없죠. 메이샹의 경우도, 품에 안고 얼르고 젖을 먹이던 새끼를 보내고 나니 본능적으로 젊은 시절과 빼닮은 애욕의 증상이 찾아온 거예요. 뒤늦게 갑자기 찾아온 봄바람, 이걸 어찌할까요? 만일 야생이었으면, 새로운 파트너를 만나서 뒤늦게 늦사랑을 활활 지폈을만도 한데, 동물원에는 함께 늙어가는 처지의 노쇠한 남편 톈톈과 가족의 연을 끊은 아들밖에 없습니다. 놀라운 일은 여기서 끝난게 아닙니다. 프로게스테론 수치가 올라갔다 내려가는 형태는 정확히 임신 때의 그것과 일치합니다. 상상임신 증상입니다. 사람들이 별달리 손을 못써주는 사이 혹여 꿈 속에서 새로운 서방과 만나서 화끈한 늦사랑이라도 나눈 걸까요? 동물원 사람들은 안타깝고 애틋한 마음으로 메이샹의 컨디션이 정상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평생의 반려자가 이렇게 불 같은 신체변화를 겪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늙은 수컷 판다 톈톈은 심드렁하게 질겅질겅 죽순잎사귀를 씹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푸바오와 동갑인 수컷 샤오치지를 낳은 메이샹(왼쪽)과 톈톈 부부. 2000년부터 스미스소니언 동물원에서 살았으며, 내년에 샤오치지와 함께 중국으로 이주할 예정이다. /Smithsonian's Zoo, Jessie Cohen

스미스소니언 동물원도 판다가족을 중국으로 보내기 위한 절차를 곧 시작한다고 하니, 어쩌면 푸바오와 비슷한 시기에 중국에 도착할 수도 있겠습니다. 서방 국가에서 태어난 이민자 2세,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선조들의 뿌리가 있는 고향으로 이끌려왔고, 종족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의무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푸바오와 샤오치지가 베스트 커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때마침 22일은 동양권의 밸런타인 데이인 칠월 칠석날이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사랑의 화살을 쏘아주는 큐피드 역할을 하는 중매쟁이 할아버지 월하노인(月下老人)이란 존재가 있다죠? 물론 중국 판다보호당국이 월하노인 역할을 하겠지만, 푸바오와 샤오치지가 부부의 연을 맺는다면, 그래서 메이샹과 푸바오가 고부의 인연으로 이어질지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설마 그렇게 된다한들 이 둘이 마주볼일은 없을테지만요.

수요동물원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