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65

동양 천하에 용호상박이 있다면, 아프리카 사바나의 강에는 하악상박이 있습니다. 용과 범 대신 오늘도 피가 튀기고 살점이 찢기게 싸우면서도 전략적 평화를 이루고 살아가고 있을 두 괴수, 바로 하마와 악어죠. 한놈은 젖먹이 짐승이고 한놈은 비늘로 덮인 파충류입니다. 젖먹이 짐승이 물풀을 뜯고 사는 초식이라면, 파충류는 피와 살점과 뼈에 의존해 살아가는 육식입니다. 태생적 근본부터 신체구조까지 전혀 다르지만, 강과 늪을 기반으로 살아간다는 점, 또한 적극적으로 살육을 일삼는 위험천만한 괴수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Life of Crocodile Youtube 나일악어가 입에 문 새끼하마의 사체를 내동댕이치기 위해 마구 흔들고 있다.

괴팍한 성질머리와 압도적 덩치 때문에 언제나 하마가 우위를 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사정이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바로 오늘 소개해드릴 비극처럼 말이죠. 유튜브(Savage Nature) 동영상 먼저 보실까요?

어쩌면 갓 태어난 이 새끼하마도 초롱초롱한 꿈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미 젖을 먹고 쑥쑥 자라서 늪지의 제왕으로 군림하고 싶었겠죠. 성별이 숫놈이었다면, 끓어오르는 육체적 욕망을 지체없이 발산하며 자신의 유전자를 흩뿌리는데 여념이 없었을 것입니다. 여느 하마들처럼 물속으로 똥폭탄을 분사하며 자신의 치세를 호령했을 것입니다. 이 새끼 하마의 올망졸망한 꿈은 그러나 악어의 이빨 속에 산산조각나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어떤 연유로 태어나자마자 악어밥이 된 걸까요? 야생에서 ‘왜?’같은 철학적 사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먹거나 먹히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새끼 하마 사체를 통째로 확보한 악어는 이제 죽음의 만찬을 벌일 참입니다. 악어의 이빨은 베어물기도, 씹어삼키는데도 적합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물고 돌리고 찢어내 조각낸뒤 삼킵니다. 악어를 악어답게 하는 비장의 공격, 바로 죽음의 회전(Death Roll)이죠. 모카롤도, 캘리포니아롤도 아닌 이 데스롤은 공룡시대부터 존속해온 이 괴물족이 전승해온 비기입니다.

/fivezerosafari.com. Kurt Jaybertel 악어들이 집단으로 사냥한 먹잇감에 달려들어 '죽음의 회전'으로 살점을 잘라내 포식하고 있다.

악어 하면 떠올리는 것이 바로 길다란 주둥이를 따라 늘어서 있는 이빨이죠. 위턱과 아래턱을 앙다물었을 때 이빨이 가지런하게 정돈돼있으면 앨리게이터, 삐쭉빼쭉 돌출돼있으면 크로커다일로 구분하는 간단한 구별법이 있습니다. 죽음의 회전은 주로 크로커다일의 전매특허처럼 여겨져왔습니다. 주로 아프리카 나일강과 호주 해안가 등에 살면서 대형 초식동물을 사냥하면서 이 공격법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거든요.

악어의 입과 이빨 구조는 잘근잘근 씹는 걸 불가능하게 합니다. 적당한 크기로 뭉텅이로 자른 다음에 목구멍으로 넘기면 그 다음에는 뱃속에서 분비될 초강력 위산으로 녹여내는 것이죠. 크로커다일은 주로 물속에서 잠자코 가만히 있다가 갈증을 축이러 온 물소나 영양, 멧돼지, 얼룩말 같은 큰 먹잇감을 습격한 뒤 물속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버둥거리던 먹잇감이 혼이 빠져나갈 자비 따위는 베풀지 않습니다. 어느정도 여건만 되면 바로 데스롤이 시작됩니다. 숨통이 붙어있고 의식이 또렷한 상태에서 네 발이 뜯겨져나가는가 하면 얼굴 피부가 벗겨지는 잔혹극이 벌어집니다. 흙탕물이 흐르던 강은 붉은 물감을 탄 듯 핏빛으로 변하고요. 악어 무리는 경쟁과 협업이 이루는 기묘한 조화의 원리로 작동합니다. 결국은 더 많은 고깃덩이를 가져가기 위한 쟁탈전이 벌어지지만, 그 쟁탈전의 과정에서 먹잇감은 더 잘게 쪼개지게 되거든요. 악어에게 잡혀 물속으로 끌려들어온 누, 이 가련한 짐승의 몸뚱아리를 향해 달려들어 ‘죽음의 회전’을 펼치는 악어들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BBC Youtube) 보실까요?

크로커다일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앨리게이터, 훨씬 아담하고 온순한 카이만, 가비알 등 다른 종류들도 기본적으로 태생적으로 죽음의 회전 공격을 활용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장고한 세월을 통해 악어 족의 번성에 이바지해온 이 죽음의 기술은 이제 과학적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물고 찢어발기는 것이 아닌, 보다 정교하면서 구체적인 과학적 매뉴얼이 존재할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죠.

이런 추정은 어느정도 사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2007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웨스트체스터대 생물학과 프랭크 피시 박사팀이 발표한 논문이 화제를 모았습니다. 실제 악어의 데스롤 동작을 일정한 패턴으로 분석해 수치화했거든요. 연구진은 몸길이 29㎝짜리 앨리게이터(미시시피 악어)의 죽음의 회전 동작을 면밀히 관찰했습니다. 회전을 할 때는 기다란 몸통이 거대한 회전축이 됩니다. 본격적으로 회오리질을 하기 전에 네 발은 몸통쪽으로 착 붙입니다. 회전력을 최대화하기 위해 신체를 최대한 일치시키려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먹잇감의 살점을 뜯어내기 위한 회전 동작시 일정한 각도를 유지한다는 것을 찾아냈습니다. 가령 평균적으로 머리를 굽히는 각도는 49.3도, 꼬리를 구부리는 각도는 103.3도 였다는 겁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 그 때 그 때 달라지기는 해도, 최적의 성과를 도출할 수 있는 ‘마법의 숫자’가 입력된게 아닌가 추정해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Chelsea Jonas Youtube 캡처 악어농장에서 사육중인 악어가 다른 악어의 발을 물고 죽음의 회전 공격으로 끊어내기 직전의 모습.

물론 실제의 죽음의 회전은 훨씬 다이내믹하고 잔혹하게 전개됩니다. 다음의 동영상(Chelsea Jonas Youtube)은 이 족속이 얼마나 영민하면서도 잔혹한 품성을 타고났는지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악어농장에서 먹잇감을 던져주는 과정에서 한 녀석이 다른 녀석의 앞발을 물고 죽음의 회전을 통해 순식간에 뜯어내 꿀꺽하는 장면입니다.

물론 악어가 오로지 죽음의 회전에만 의존해 사냥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11월 동물 인터넷 매체 AZ Animals가 지구상에서 무는 힘이 가장 센 동물 열 종류를 꼽아 순위를 매겼는데요. 가장 무는 힘이 강력한 동물은 4000psi의(제곱인치 당 파운드) 백상아리였지만, 2~4위는 바다악어(3700psi)·나일악어(3000psi)·미시시피악어(2980psi)가 뒤를 이었습니다. 10종 중 3종이 악어였으니, 이 짐승족속이 얼마나 강력한 턱힘을 타고났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죽음의 회전 없이도 악어가 가공할만한 이빨 파워로 단단한 등갑의 거북을 작살내는 동영상(유튜브 Meilleurs Animaux) 한 번 보실까요?

몇번의 입놀림만으로 단단했던 거북의 등껍질이 ‘빠각’하는 소리와 함께 부서지고 그 사이로 살과 근육과 핏물이 삐져나옵니다. 언제까지나 자신을 지켜줄 것으로 확신했던 자신의 등갑이 우두둑 부서지는 소리를 듣는 거북은 얼마나 두렵고 절망적이었을까요? 그런 감정에 빠져들기에 약육강식 세상은 잔혹하고 냉정합니다. 못먹는게 대체 없을 것 같은 이 괴수가 한반도의 지천에 살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더없는 축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온난화와 이상기후 현상이 지속되는한, 어쩌면 아주 먼 훗날에 악어가 상륙하는 날이 도래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길한 상상도 해봅니다.

수요동물원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