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동인문학상 최종심 후보로 강영숙·김태용·정용준·조해진이 선정됐다.
올해로 53주년을 맞은 동인문학상은 한국 문학의 축제.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지난해 12월부터 매월 독회를 통해 가장 읽을 만한 신간 소설을 독자들에게 추천해 왔다. 최근 본심에서는 그동안의 추천작 16편 중 ‘두고 온 것’(강영숙), ‘러브 노이즈’(김태용), ‘선릉 산책’(정용준), ‘완벽한 생애’(조해진)를 최종심 후보작으로 정했다. 수상작은 10월 중순 선정된다.
표결을 통해 최종심 후보작을 뽑은 심사위원회는 “개인의 사적인 이야기가 소설의 지배적인 분위기로 자리 잡는 추세지만, 개인의 이야기 안에 사회적, 보편적인 성찰을 담고 있는 작품들을 고른 것”이라며 “최종 후보에 들지 못했지만 주목할만한 신인이 많았고, 추리, SF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한 작품이 많아 앞으로 한국 문학의 좋은 활력을 가져올 것으로 본다”고 평했다.
강영숙의 후보작 ‘두고 온 것’은 실직 등 불행을 겪은 이후 두고 온 것을 찾아 헤매는 인물들의 모습을 묶은 소설집이다. 심사위원회는 “찾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부단히 애를 쓰는 것, 그래야 하는 것, 그것이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어렴풋하게 암시하는 소설”이라고 평했다.
김태용의 후보작 ‘러브 노이즈’는 외로운 인물들이 자신의 삶을 밝혀줄 언어를 찾아 나서는 소설이다. 심사위원회는 “정보나 이야기가 전달하는 매끈한 세계 이전에 사막과 같은 실재로서 존재하는 세계의 소음을 상기시켜준 작품”이라고 평했다.
올해의 동인문학상 축제는 무대를 앞둔 작가들의 ‘입’을 통해 피날레로 향한다. 작품에 대한 설명과 책에서 못다 한 고백을 담은 작가의 말을 두 차례로 나눠 소개한다. 올해 한국 문학의 빛나는 성과를 함께 읽으며, 독자 스스로도 동인문학상 심사위원의 한 명으로 참여해 보시기를.
‘두고 온 것’|강영숙
얼음구멍에 머리 넣어서라도 놓친 것, 두고 온 것 찾겠다
‘두고 온 것’은 나의 여섯 번째 단편소설집이고, 통산 열 번째 책이다. 내 작품은 두 번 정도 동인문학상 최종심에서 (김애란 작가와 김숨 작가가 수상했을 때) 얘기가 된 것으로 안다. 수상한 작가들이 모두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하고, 소설을 어떻게 저렇게 쓸까 감탄한 적이 많았던 작가들이라 기사를 읽고는 바로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이번 소설집에는 손가락 사이로 바닷물이 빠져나가듯, 무언가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다고 생각되는 짧은 순간을 기록한, 어쩌면 사소한 이야기들이고 서사라고 할 만한 것은 아닌 소설이 한데 모여 있다. 펜데믹의 와중에 쓴 소설도 있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최근엔 유독 소설 쓰기가 쉽지 않았고 집중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출간 작업 막바지에는 교정지를 들고 강원도 진부의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소설을 쓰는 일에는 연공서열이 큰 의미가 없다. 그리고 내가 이 작품들을 쓰기는 했지만, 소설에 대해서나 삶에 대해서나 이렇다거나, 어떨 것이라고 할 만한 말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변한 것은 없고, 그럼에도 변화의 와중에 있는 시간을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지금은 아마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도 초반부터 지금까지, 소설이라는 양식을 앞에 두고 했던 다짐, 그 다짐의 결이 뭉개지는 시간을 견디고 버티게 해준 것도 결국 이 파편화된 소설들이라는 게 신기하고 고맙다.
소설이 통과한 공간과 시간은 엄연했다. 연남동, 수유리, 후암동, 낙산, 취푸, 라플린. 인물들도 선명하고, 서사가 발생했던 시간도 선명하다. 그런데 그 선명함 너머에는 의외로 침묵의 세계가 있다. 하지만 침묵은 아직 두렵고, 아마도 이 침묵이 다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두고 온 것’의 주인공 ‘민수’처럼 차가운 얼음 구멍 속으로 자꾸만 머리를 집어넣어 가면서라도 두고 온 것, 놓친 것, 사소한 것을 기억하고 찾으려는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이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싸움이고 이것이 내가 쓰는 소설의 운동 방식이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또 소설을 쓰거나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문학 하는 행위가 무목적의 목적을 지향한다는 것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만약 어떤 기대나 목적이 있었다면 오히려 이렇게 오래, 그리고 멀리 오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이런 초대는 작가에게도 독자에게도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다.
‘러브 노이즈’|김태용
난해한 작가라고? 내 사랑 이야기 읽어보라
‘러브 노이즈’는 어떤 소설인가요? 누군가 물어보면 여름에서 시작해 겨울에 끝나는 소설입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다. 농담 같은 설정이 소설을 시작하게 했다. 2014년 처음 구상해 2015년 잡지에 연재하고 오랫동안 미완의 원고로 머물다 2021년 가을이 되어서야 책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그사이 나와 내 주변, 그리고 세계의 풍경이 많이 달라졌고 소설에 대한 생각과 방향도 여러 차례 수정되었다. 이전 작품에 대한 난해함과 실험성이라는 세간의 평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여느 작가들처럼 나 역시 이야기를 사랑하고, 허구 세계의 존재들이 만드는 서사 구조에 매혹되어 있다.
‘러브 노이즈’는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라는 김소월의 시를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이 구절이 작은 구멍이 되어 소설의 세계를 들여다보게 하고 싶었다. 어딘가를 바라보는 인물들의 움직임을 연결해 서사의 물결을 만들려 했다. 잔잔하게 요동치고, 굽이치고 갈라지다, 휘돌아 나가는 사랑 이야기를 슬프고 귀엽고 강렬하게 쓰고 싶었다.
1989년 여름부터 2019년 겨울 동안 서울, 미국, 멕시코, 제주도의 공간을 떠도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한스, 조니, 차정, 차미, 솔랑쥐, 제니퍼, 빈센트, 줄리의 이름을 부르면 지금도 소설을 쓰던 시간 속으로 빠져들고, 뭔가 울컥한 것이 내부에서 올라오는 것만 같다. 그들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무언가를 원하고, 어딘 가에 가고 싶고, 보다 나은 삶을 바란다. 우연한 사건에 휘말리고, 삶은 언제나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있는 것처럼 떠돈다. 소설의 장이 바뀔 때마다 인물은 중심에서 주변으로 자리를 바꾸고,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반짝거리며 사라진다. 오랫동안 그들에게 몰입했고, 허구의 형상들을 믿으며 소설적 환영을 좇아 느린 걸음으로 밤 산책을 하곤 했다. 실제 역사적 배경 속에서 그들이 걸어가는 낯선 풍경으로 서사적 리얼리티를 만드는 일은 외롭고 즐거운 작업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음악이 있었다. 소설의 장면마다 음악이 들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침묵이라는 언어의 음악까지.
‘러브 노이즈’를 쓰면서 이야기에 대해 다시 사유하고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었고, 주변의 평과 조언이 에너지를 주었다. 계속 쓰면서 에너지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계속 쓰고 있는 사람들. 문학이라는 신비한 결속을 맺은 동료 작가와 독자에게 전하고 싶다. 소설의 문장처럼 ‘우리는 어디론가 갈 수 있고, 또 무언가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