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한국계 변호사 토드 김이 미 법무부 환경·천연자원 담당 차관보에 지명됐습니다. 버락 오마바 전 대통령과 같은 하버드 로스쿨 동문인데다 대법관 후보군의 집합소로 불리는 워싱턴 DC 연방항소법원 판사까지 지낸 엘리트 법조인입니다. 그런 그가 최근 직접 수사결과를 발표한 사건이 화제입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는데 모두 사람이 아니거든요. 미국의 한 에너지기업이 풍력발전을 위해서 터빈을 세웠는데, 그 날에 부딪쳐서 최소 150마리의 흰머리수리·검독수리가 꼬꾸라져서 비명횡사한 사건입니다. 연방검찰이 직접 수사에 나서 최소 50곳에 세워진 터빈이 맹금류에게 흉기가 됐으며, 이중 상당수가 적절한 허가 절차 없이 세워졌다는 걸 밝혀냈습니다.

야생사진가 코리 아놀드(Corey Arnold)가 2017년 야생사진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작품. 알래스카의 한 항구 쓰레기통에서 흰머리수리가 썩은고기를 찾아 뜯어먹고 있다. /Corey Arnold Facebook

이는 철새보호법과 수리보호법 위반행위였습니다. 재판에 넘겨진 회사에겐 어마어마한 형량이 떨어졌습니다. 벌금 186만1600달러(약 22억8604만원), 배상금 621만991달러(약 76억2709만 달러)에 5년 보호관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독수리 관리 프로그램을 의무이수해야 했는데, 이수 비용은 최대 2700만 달러(약 331억5600만원)에 이릅니다. 여기에 앞으로 유사 사건으로 수리가 비명횡사할 경우 1마리당 2만9623달러(약3637만원)의 배상금을 내기로 했죠. 민·형사상 돈 폭탄이 떨어진 것이입니다. 김 차관보는 “흰머리수리와 검독수리 개체수를 지속가능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법무부는 자연보호법을 적용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흰머리수리에 대해 미국인들이 얼마나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는지 말해주는 좋은 사례라는 생각이 듭니다.

흰머리수리가 살점이 거의 뜯겨나간 연어 사체를 먹고 있다. /미국립공원관리청(NPS). Jason Ransom

흰머리수리는 1782년 미국의 국조로 공식 지정된 뒤 각종 정부 문양에 빠짐없이 등장했죠. 1982년 국조 지정 200주년을 맞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은 6월 20일을 전미 흰머리수리의 날로 지정했어요. 그리고 2년 뒤 열린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흰머리수리를 의인화한 마스코트 ‘엉클 샘’이 등장했고요. 다부지고 당당한 체격에 갈색 몸통에 눈처럼 흰 머리, 황금빛 부리를 한 매서운 인상의 이 새는 외모로 따진다면 맹금류중에 단연 톱이죠. 하지만, 살아가는 모습을 곰곰 들여다보면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로 굳센 이미지와 선뜻 어울리지 않는 뜻밖의 장면이 많이 등장합니다. 오죽하면 일부 미국인들조차도 ‘내가 알고 있는 그 새’가 맞나 한숨을 쉴 정도입니다.

사진가 코리 아놀드(Corey Arnold)가 알래스카에서 찍은 사진. 항구에 쌓인 쓰레기더미에서 흰머리수리들이 먹을 것을 찾고 있다. /Corey Arnold Facebook

스케빈저(scavenger). 주로 사체를 파먹고 살아가는 동물들을 말합니다. 지구를 건강하게 해주는 생명의 바퀴(circle of life)의 핵심 동력이죠. 필수불가결한 존재들이지만, 스케빈저들은 음흉하고, 어두우며, 코를 찌르는 시체 썩는 냄새를 달고 다닙니다. 맹금류는 살아숨쉬는 먹잇감을 직접 습격해 날카로운 발톱으로 찢어발긴 뒤 살과 내장을 북북 찢어먹는 헌터(hunter)와, 파리와 구더기가 들끓는 시체를 파고들어가 말라붙어가는 살점과 힘줄을 뜯어먹는 스케빈저로 구분됩니다. 검독수리를 위시한 수리류, 매, 황조롱이 등이 헌터에 속한다면,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나는 독수리와 아프리카 대머리수리, 남미 콘도르 등은 스케빈저이죠. 그런데 흰머리수리는 당연히 분류학적으로도 헌터에 속하지만, 스케빈저 기질도 상당합니다. 흰머리수리는 물고기·물새·설치류 등을 직접 사냥해서 잡아먹습니다. 그런데 늘 싱싱한 피와 살만 탐하지 않습니다.

달을 배경으로 나무위에 앉은 흰머리수리가 포효하는 모습이 신비로운 모습을 자아내고 있다. /코네티컷주 홈페이지

썩어가는 사체는 물론 사람들이 먹다 버린 음식찌꺼기까지 거뜬하게 먹어치웁니다. 연어잡이와 가공이 활발한 알래스카 연안의 항구에는 흰머리수리가 마치 까마귀나 비둘기처럼 무리를 지어서 호시탐탐 아래를 내려다보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살을 발라내고 남은 비늘과 대가리를 바닥에 던져놓으면 잽싸게 채가서 해변가로 간 뒤 갈매기처럼 와구와구 먹습니다. 연어잡이로 생계를 꾸려가는 알래스카의 항구에서는 덩치가 산만한 흰머리수리들이 비둘기마냥 떼지어 돌아다니면서 생선찌꺼기나 음식쓰레기를 찾아다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죠. 가만히 있어도 굳이 먹을거리가 쏟아지는데 힘들여서 사냥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야성을 잃는다고 걱정을 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이 역시 진화과정인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 새의 이름 자체에서 스케빈저의 기운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기도 합니다. 영어 이름인 ‘bald eagle’을 직역하면 대머리를 가진 수리가 되거든요. 머리가 벗겨진 한반도의 독수리나 사바나의 대머리수리, 남미 콘도르의 생김새를 연상시키는 이름이죠. 여기서 bald는 대머리를 뜻하는게 아니라 흰색을 뜻하는 고대 영어 balde에서 유래됐다는게 정설입니다.

미국의 국조로 사랑받고 있는 흰머리수리가 두 날개를 펼치고 창공을 날아가고 있다. /메사추세츠주 홈페이지

사실 흰머리수리의 특기는 또 있습니다. 바로 약탈이지요. 남이 공들여 잡은 먹이를 끝까지 쫓아가 기진맥진하도록 괴롭힌 뒤 나꿔채 자기 뱃속으로 밀어넣는 강도질에 능합니다. 그 최대 피해자가 군용기 이름에 사용될 정도로 빈틈없이 정확한 사냥솜씨를 자랑하는 물수리(osprey)입니다. 물수리가 발톱으로 펄떡이는 물고기를 찍어누른 채 둥지로 돌아오는 동선까지 파악하고 있다가 큰 덩치로 달라붙어 괴롭힌 뒤 떨어뜨린 물고기를 냉큼 빼앗는 거죠. 사실 이런 먹이 강탈은 헌터인 수리류들 사이에서도 제법 만연해있긴 합니다. 하지만, 이번 풍력발전기 사건의 공동 피해자인 검독수리의 사냥법과는 확실히 구분되죠. 북아메리카에만 터를 잡고 사는 흰머리수리와는 달리 검독수리는 한국을 포함해 유라시아까지 널리 분포해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보다 덩치가 큰 양이나 염소, 심지어 여우나 어린 늑대까지 사냥하는데, 특히 절벽에서 야생 염소를 채간 뒤 낭떠러지에서 떨어뜨려 숨통을 끊어버리는 잔혹한 사냥법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죠. 유명한 유튜브 동영상입니다.

위용과 어울리지 않게 썩은고기를 탐하거나 남의 것을 빼앗는 모습에 일부 실망하는 미국인들도 있나봅니다. 2020년 1월 일리노이대 학내소식지에는 지질연구자 크리스토퍼 엔로스의 흰머리수리 고백록이 실렸어요. 이런 시절 TV드라마와 영화에서 ‘휘이~’하는 낭랑한 소리를 내며 창공을 가르는 흰머리수리의 비행장면이 기억에 선연한데, 알고보니 이 멋진 울음소리의 주인공은 붉은꼬리매였고, 실제로 알게된 흰머리수리의 울음소리는 갈매기에 가까운 탁성이었다는 것이죠. 그는 미국의 국조를 지정한 건국의 아버지들 중에서 벤자민 프랭클린의 영향력이 더 컸더라면, 어쩌면 국조는 흰머리수리가 아닌 야생 칠면조가 됐을 것이라는 가정도 내놓습니다. 다만 프랭클린이 국조로 칠면조를 바랐다는 이야기는 초창기 흰머리수리 국장 디자인을 마음에 들지 않아했다는데서 와전됐다는 게 정설이죠. 그런데 지금까지 전해지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흰머리수리에 대한 기록을 보면 아주 평가가 박했답니다.

일각에서는 벤자민 프랭클린이 미국 국조로 흰머리수리보다 칠면조를 선호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사실과 거리가 멀다는게 중론이다. 1962년 뉴요커지에 나왔던 가상의 칠면조 미국국장. /스미스소니언매거진. 뉴요커지아카이브

“이 새는 도덕적으로 악랄한 성격이다. 정직하게 살지도 않는다. 게다가 냄새도 고약한 겁쟁이다.” 모든 짐승들이 그런 것처럼 이 새도 그저 본능에 따라 생활환경에 최적화된 것일 뿐입니다. 보는 사람을 반하게 하고 가슴설레게 하는 뛰어난 외모를 가졌지만, 알고보면 속되고 비루한 면도 있는 ‘생계형 맹금류’랄까요. 그래도 목숨을 앗아간 풍력발전기 운용업체에 엄벌과 벌금 폭탄이 쏟아졌으니 한 결 자유롭고 안전하게 창공을 날 수 있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