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공룡 하면 어떤 종류가 떠오르시나요? 두 말 할 나위 없이 공룡의 제왕 티라노사우르스인지요? 뿔을 앞세워 이 폭군에 용맹하게 맞서는 트리케라톱스인가요? 그것도 아니면, 날카로운 꼬리를 칼처럼 휘두르는 스테고사우르스일까요? 아니면, 거북선을 연상시키는 단단한 갑옷의 안킬로사우르스입니까? 집채만한 몸집의 카리스마를 갖춘 브론토사우르스? 아니면 두 날개를 퍼덕이며 창공을 가르는 프테라노돈일지요? 그러나 이런 전통의 괴수들보다도 많은 분들은 ‘벨로시랩터’를 떠올릴 것이라 감히 추측합니다. 소설과 영화로 공전의 히트를 친 ‘쥬라기공원’을 통해 본격적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이 공룡은, 덩치는 다른 종류보다 훨씬 작지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포악함과 간교함으로 스크린으로 만나는 것만으로 섬뜩함을 안겨줍니다.
만일 벨로시랩터가 실제로 우리 세상에 존재한다면요? 모골이 송연해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이 벨로시랩터 못지 않은 섬뜩한 파충류가 지금 미국 플로리다주를 휩쓸다시피하고 있습니다. 녹색이구아나입니다. 험상궂은 외모와 달리 온순한 성격과 사람과의 교감으로 제법 사랑받는 반려파충류로 알려져있죠. 그런데, 플로리다의 상황은 자못 심각합니다. 황소개구리를 능가하는 주변 환경 적응력과, 바퀴벌레에 버금가는 생존력으로 만물의 영장 인간을 극도의 공포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급기야 플로리다에서는 이례적으로 살생까지 허하며 이구나아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이럴 바에야 먹어서 없애자는 캠페인까지 시작했습니다.
주택가와 물가, 도로변, 곳곳에서 날카로운 발톱과 꼬리를 흔들며 위세를 과시하는 놈들의 위용은, ‘쥬라기 공원’속 벨로시랩터들이 뿜어내는 카리스마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늪지와 숲이 풍부해 여러 야생동물들의 서식처가 있는 플로리다. 그러나 당초 이곳은 이구아나의 땅이 아니었습니다. 반려동물로 기르다 버려지거나 도망친 이구아나들이 터를 잡았죠. 이 냉혈 파충류에게 연중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는 플로리다는 새로운 삶터가 됐습니다. 물만난 고기처럼 플로리다에 자신들의 왕국을 건설했습니다. 비슷한 처지의 이구나아들끼리 만나서 짝짓기철인 10~11월에 집중해 불같이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가열차게 번식에 나섰습니다.
한 배에 최대 76개까지 알을 낳습니다. 야생에서는 통상 10년, 최장 19년까지 살았다는 기록이 있는 이구아나는 암컷 기준으로 생후 2년 정도 지나면 짝짓기와 번식이 가능하게 됩니다. 덩치가 작은 어린 이구아나들은 다른 동물들처럼 어릴때는 포식자들의 먹잇감으로 종종 희생되죠. 하지만, 일단 몸길이가 70㎝까지만 자라도 천적은 존재하지 않게 되는데, 다 자라면 몸길이가 2.2에 달합니다. 뒷발을 들고 일어서면 벨로시랩터와 별반 차이가 없는 덩치입니다. 이구아나는 통상 진화론의 교과서로 불립니다. 갈라파고스섬에서 사는 이구아나가 살아가는 지역에 따라 육지이구아나와 바다이구아나로 각각 특화됐다는 것이죠.
그런데 플로리다에 터잡은 녹색이구아나는 어쩌면 진화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에게 ‘유형별 거주지’는 전혀 의미가 없거든요. 이들은 도로와 인도를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연못과 운하를 능숙하게 헤엄칩니다. 나무는 물론 주택 담벼락도 능수능란하게 올라가죠. 바닷물과 민물 어디에서도 능숙하게 헤엄을 치고 무려 네 시간동안 잠수를 탈 수도 있습니다. 굴파기에도 능해 곳곳에 굴을 파고 굴끼리 연결도 시키며 촘촘한 지하네트워크까지 구축합니다. 이렇게 공간이라는 공간을 다 점령하다시피하면서 인간에게 실존적 위협이 됐습니다. 버려진 반려동물의 복수극인 셈이죠.
가열찬 굴파기로 인해서 도로 등 기반시설과 건축물이 안전위협까지 받는 상황이 됐습니다. 몸길이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꼬리를 채찍처럼 흔들며, 갈고리같은 발톱으로 천적을 위협합니다. 자칫 치명상을 입고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습니다. 벨로시랩터와 무엇이 다를게 있겠습니까? 딱 하나 입맛이죠. 기본 베이스는 초식입니다. 하지만, 비건은 아닙니다. 달팽이와 새알 등 육식을 곁들이고, 시체도 종종 뜯어먹습니다. 이 족속이 코모도왕도마뱀처럼 100% 육식이라고 상상한다는 것 자체가 몸서리가 처집니다. 어쩌면 플로리다는 짐승의 기세에 눌려 사람이 버린 최초의 땅이 됐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특단의 조치가 없을 경우, 이구아나에게 인간이 정복당할 수 있겠다는 위기감이 커지자 플로리다 주정부는 결국 2021년 4월에 ‘금지된 동물 종’ 목록에 공식 등재했습니다. 그리고 포획, 한 발 더 나아가서 살생까지 허가했습니다. ‘인도적인 방법’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잡은 이구아나의 숨통을 끊을 수 있도록 살생권을 위임한 것이죠. 그리고, 이들의 활약상이 두드러집니다. 바로 이구아나 헌터, 아니 이구아나 킬러들이죠. 미국 잡지 ‘아웃도어라이프’가 최근 이구아나 킬러의 일상을 소개한 기사가 있습니다.
이구아나 킬러 마이크 키멜은 지방자치단체에 직접 고용돼 골프장과 주택가 등에서 신고를 받고 출동해서 이구아나를 처치합니다. 그의 출동에는 사냥개 오토가 함께 하죠. 요즘은 특히 수로 등 관개시설마다 이구아나들이 점령하다시피 하고 있어 도시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운하와 수로 등에서 처치 작업을 할 때면 혼자서 작업하는데 한계가 있어 별도로 공기총을 쏘는 포수들까지 고용합니다. 거대한 꼬리와 날카로운 발톱으로 무장한 이구아나는 살아있는 병기입니다.
코너에 몰리면 물어뜯기까지 합니다. 이들을 고통없이 순식간에 절명시키는 방법은 바로 총탄을 머리에 명중시키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가장 비인간적인 듯 보이는 방법이 실제로는 가장 인간적인 가혹한 역설입니다. 많게는 하루에 90마리까지 처리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잡아도 잡아도 그 잡는 속도가 이구아나가 번식을 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모양새입니다. 결국 총으로 쏴죽이는 것만으로는 한계에 봉착하자 최후의 카드가 나옵니다.
바로 먹어서 없애는 것이죠. 이구아나를 없애야 할 외래종 유해생물에서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먹거리로 포지셔닝할 경우 자연스럽게 씨가 말라가지 않겠냐는 희망섞인 추측은 과연 효과를 휘할까요? 다음 동영상은 플로리다 못지 않게 녹색이구아나들의 점령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푸에르토리코 주민들이 이구아나를 식재료로 처리하는 모습을 소개한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의 한 장면입니다.
동영상에서 요리사는 이구아나 고기에 대해서 어떻게 보면 생선같기도 하고 치킨 같기도 한데, 생긴 것은 빨간 육고기같다고 설명합니다. 시식회 참석자들이 맛있다며 고개를 끄덕이지만, 과연 먹거리로 안착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살생이 가능하도록 행정지도까지 할정도로 주민들에게 실재적 공포로 다가온 이구아나. 과연 이쯤에서 제어가 될까요? 아니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서 생존력 최강의 파충류로 업그레이드돼 인간을 누르고 우세종으로 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공룡시대가 다시 도래하는 것은 아닌지 지켜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