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이던 지난 4일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 코로나 확산의 여파로 여느 때보다 한적한 동물원이 오전부터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아침 일찍 수의사와 사육사들이 사자우리가 있는 제3아프리카관으로 집결했습니다. 관악산 너머 서울대 수의과대학에서도 수술장비와 함께 교수와 의료진이 합류했습니다.
이들이 모인 목적은 만화영화 ‘라이온킹’에서 주인공 심바와 백년가약을 맺는 현명하고 용감한 사바나의 여왕 ‘날라’와 빼닮은 늠름하고 아름다운 암사자 ‘청자’를 위한 특별한 수술을 위해서였습니다. 중성화 수술입니다. 중성화 수술은 과잉 번식을 막고 동물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인간과의 공존이라는 공간적 한계를 극복하는 목적으로 반려동물로 키우는 개와 고양이, 또는 길고양이에게 주로 시행돼왔습니다.
백수의 왕 사자족(族)의 일원을 중성화시킬 수 밖에 없는 어떤 곡절이 있었을까요. 동물원 관계자들은 “청자가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합니다. 서울대공원 사자무리는 암사자 5마리 숫사자 4마리로 구성돼있습니다. 암컷 5총사중 한 마리인 청자는 2011년 과천으로 왔고, 정확한 출생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최소 아홉살이라는 얘기입니다. 사람의 나이로 치면 쉰을 넘어 환갑을 향하는 나이입니다. 여기서 고민이 시작됩니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에게 나이는 대개 동일집단에서 존경과 배려의 대상입니다. 연륜이라는 단어가 그래서 있습니다. 하지만 약육강식의 동물계에서 나이는 그저 초라한 쇠퇴로 향하는 길목일 뿐이죠. 혈기왕성한 암사자들에 치여서 구박당하거나 따돌림당하는 장면이 사육사들의 안타까움을 샀습니다.
그에게 호기심을 보이고 구애하는 숫사자도 없었습니다. 이렇듯 요즘 청자의 처지는 ‘날라’보다는 뮤지컬 캣츠의 늙은 암코양이 ‘그리자벨라’에 더 가깝습니다. 공교롭게도 수컷 네마리중에도 청자와 비슷한 처지의 사자가 있습니다. 올해 다섯살난 ‘레옹’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왕성하게 활동할 40대이지만, 수컷간의 세력다툼에서 언제나 밀리는 약자였습니다.
‘청자’와 ‘레옹’의 사정을 잘 알던 동물원 측은, 본격적인 강추위에 대비한 내실생활에 들어가기에 앞서 두 마리를 따로 떼어내어 합사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합니다. 제법 나이 차이는 나지만, 동병상련의 아픔을 지닌 이 커플이 서로에게 위안이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들은 비록 무리에선 약자더라도 엄연한 암수 한쌍이라는 점입니다. 더구나 바깥보다 상대적으로 좁은 내실에서 지내는 날이 많을수록 암수간 애정의 불꽃이 튀며 눈이 맞는 상황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매우 컸습니다. 사자 짝짓기의 특징은 ‘USBORT’라는 단어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기가 막힐 정도로 아주 짧게 이뤄지지만(Ultra-Short, But), 횟수가 잦고(Often), 시간과 장소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Regardless of Time and location)는 뜻입니다.
‘라이온킹’에서 아기사자의 탄생은 사바나의 축복으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현실의 동물원에서는 다른 얘기입니다. 한정된 공간에서의 관리문제, 자칫 부모·형제간 근친상간이 이뤄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점 등의 고민이 현실이 됩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중성화입니다. 동물원은 가능한 중성화 시나리오를 정했습니다. 첫번째, 청자의 난소를 절제하거나, 두번째, 레옹의 정관을 묶는 두가지 방법을 두고 전문가들이 회의를 벌인 끝에 첫번째 방안을 추진하기로 합니다. 상대적으로 젊은 레옹의 유전자가 향후 혈통 보전을 위해 필요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기도 했습니다. 방향을 정했으니 방법을 정해야 합니다. 먼저 한달 간격으로 호르몬제 주사를 놓는 이른바 화학적 시술의 경우 호르몬제 특성에 따라 심각한 부작용이 있거나 주사를 맞을 때 스트레스 반응을 보일 수도 있어 제외됐습니다.
이에 따라 수술을 통해서 난소를 인위적으로 절제하는 쪽으로 방향이 잡혔습니다. 그런데 직접 절개를 하고 시술할 경우에는 마취에서 무사히 회복하더라도 사자의 행동특성상 수술 부위를 자주 핥아 염증이 생기고 훼손돼 상태가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습니다. 이에 따라 복강경 및 초음파 응고·절개 장치라는 첨단 수술장비를 이용해 난소를 절제하기로 했습니다.
외과적 수술을 하되 피부를 길게 절개하지 않고 직경 1㎝ 내외의 구멍을 세 개 뚫어서 그 안으로 각각 투관침, 집게, 초음파 절개장치, 외과용 내시경 등의 첨단 의료장비를 삽입합니다. 이후 초음파 에너지와 고주파에너지를 활용해 난소 조직의 절개와 응고 및 혈관봉합이 재빨리 이뤄지는 수술방식입니다.
이 방식으로 반려동물과 곰에서 여러 차례 성공적으로 시술했던 서울대 수의대 연성찬 교수팀이 복강경 장비를 가지고 직접 동물원으로 왔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사자 중성화 수술이 진행된 것은 창경원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 동물원 111년 역사상 처음이었습니다. 연 교수는 “복강경 방식을 대형 맹수인 사자에게 적용한 전례가 없어 국내 수의학계와 동물원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고 했습니다.
준비부터 시술까지 두 시간이 지나고 회복실로 옮겨진 청자는 30여분뒤 마취에서 깨어나 지금은 건강한 모습으로 회복 중입니다. 이번 수술에 참여한 서울대공원 송인준 수의사는 “길게 절개하지 않은 복강경 시술 덕에 회복 과정이 빠르고 원만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따라 청자는 곧 계획대로 ‘레옹’과의 겨울철 합사가 추진될 예정입니다. 이제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걱정 없이 둘은 살을 맞대고 살면서 USBORT한 사랑을 나누는 중년 커플이 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실제로는 합사가 이뤄지더라도 ‘뜨거운 중년’보다는 ‘남사친·여사친’처럼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사자를 포함한 대다수 짐승들의 짝짓기는 ‘암컷의 특별한 기운에 자극받은 수컷의 돌격’이라는 메커니즘에 따라 진행되는데, 난소가 절제되면 이 ‘특별한 기운’이 뿜어나올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란히 초로(初老)를 향하며 오누이처럼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모습도 나름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이번 수술은 동물원 전시 동물의 삶의 질과 사육공간의 한계에서 접점을 찾아가는 중요한 선례가 될 것으로 봅니다.
‘캣츠’에서 늙은 암코양이 그리자벨라는 마침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고양이로 간택받으며 일생 일대의 반전을 이룹니다. 생의 후반기를 살아갈 청자도 진정한 ‘자유부인’이 되어 유쾌하고 행복한 반전이 있기를 바라봅니다. 지긋지긋한 코로나가 물러나 동물원 나들이를 마음껏 할 수 있게 됐을 때 과천 서울대공원 제3아프리카관에서 청자를 보게 되면 따뜻한 눈인사라도 건네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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