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초대 내각과 대통령실 인선이 발표되는 가운데, 대형 로펌 ‘김앤장 법률사무소’ 출신 인사들이 인선 명단에서 제외되고 있는 점이 주목을 받고 있다. 역대 정권마다 요직에 중용돼 온 김앤장 출신 인사들이 이번 정부에서는 사실상 전면 배제된 것이다.
현재까지 발표된 장·차관급 및 수석비서관급 인사 가운데 김앤장 경력을 지닌 인사는 봉욱 민정수석이 유일하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 같은 인사 기조에 대해 이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5월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이 대법원에서 유죄취지 파기환송 결정이 된 배후로 김앤장 소속 인사가 지목되기도 했다. 과거 정부와 차별되는 이번 인사가 단순한 인물 교체를 넘어 이재명 정부의 권력구조 재편 초석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6월 23일과 29일 두 차례에 걸쳐 이재명 정부의 17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대통령실 수석비서관 인선이 발표됐다. 여권에서는 이번 인선을 “기존의 엘리트 중심 인사에서 벗어나 전문성과 개혁 이미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법무부 장관에 비검찰 출신인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고용노동부 장관에 김영훈 전 민주노총 위원장,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는 AI 전문가로 불리는 배경훈 후보자 등을 지명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 환경부 장관 후보자로 시민사회 출신인 김성환 의원,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강선우 의원 등을 지명하는 등 비관료 출신 인사들도 다수 포함됐다. 전 부처를 포함해 이재명 정부 내 유일한 김앤장 출신 인사는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된 대검찰청 차장검사 출신 봉욱 변호사다. 봉 변호사는 이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한 기수 후배로, 검찰 고위직 출신이자 김앤장 변호사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과거 정부마다 다수의 김앤장 출신 인사들이 기용됐었기에, 이번 인선에서 유일한 김앤장 출신인 봉 변호사의 민정수석 임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역대 정부 모두 김앤장 중용
이 대통령의 이번 인선은 윤석열 정부는 물론, 문재인·박근혜·이명박 정부 등 김앤장 출신들이 공직 핵심에 중용돼 온 과거의 흐름과는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 김앤장은 전·현직 판검사와 고위 관료들이 다수 포진한 국내 최대 로펌이다. 지난 여러 정권에서 법무·행정·공정·외교 분야 등 핵심 요직에 김앤장 출신 인사들이 대거 중용돼 왔다. 김앤장은 단순히 변호사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각 부처와 검찰과 경찰 등 권력기관 출신 인사들을 고문으로 두고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한덕수 국무총리(전 김앤장 고문), 김남우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전 대검 차장·김앤장 변호사), 김건희 여사의 업무를 보좌한 최지현 전 청와대 비서관 등 김앤장 출신 인사들이 다수 포진한 바 있다.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의 아내 진은정 미국변호사도 김앤장에서 일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역시 신현수 전 민정수석, 신지연 전 제1부속비서관, 김진욱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등 김앤장 출신 인사들을 대통령실 요직에 기용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윤병세 외교부 장관, 조윤선 정무수석, 청와대 민정라인 등에 김앤장 출신이 다수 포함됐고, 이명박 정부도 한승수 초대 총리,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정진영 전 민정수석, 김회선 국정원 2차장 등이 김앤장 고문 또는 출신 변호사였다.
李 대통령 ‘사적 불신’ 반영됐나
이번 정부의 ‘김앤장 배제’ 기조에는 김앤장에 대한 이 대통령의 불신이 반영됐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강조한 ‘내란 종식’의 연장선으로서, 윤석열 정부 주요 세력이라는 평가를 받은 김앤장과 선을 긋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거론한 인물 중 일부는 이 대통령의 대장동 재판 파기환송 국면에서 이 대통령에게 불리한 흐름을 주도하거나,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바탕으로 ‘법조 권력’을 형성했다는 의혹도 일었다. 이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김앤장을 단순한 로펌이 아닌 자신을 정치적으로 위협한 하나의 사법·정치 연합체로 인식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평론가는 “(이재명 정부가) 김앤장 출신이나 법조계 고위직들을 지명하지 않음으로써 전임 정부들과 다른 권력 구조를 강조하고 있다”며 “봉욱 변호사를 민정수석으로 지명한 것은 (김앤장과) 과도한 거리두기로 보이지 않도록 하려는 연막일 수 있다”고 평했다.
대선 후보 시절 이 대통령 본인의 사법 경험이 해당 인선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5월 1일 이 대통령이 공직선거법 사건 상고심에서 유죄취지 파기환송 판결을 받을 당시, 의견서를 작성한 인물 중 하나로 김앤장 소속이었던 서석호 변호사가 지목되며 논란이 일었다. 서 변호사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79학번 동기로, 평소 윤 전 대통령과 가까운 관계로 알려져 있었다. 20대 대선 당시에는 윤 전 대통령의 고액 후원자 명단에 이름이 오르기도 했다. 지난 5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조희대 대법원장 등 사법부의 대선 개입 의혹 진상규명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한 서 변호사는 이 대통령에 대한 파기환송 결정을 내린 조희대 대법원장과 윤 전 대통령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했다는 의혹 등으로 청문회에 증인으로 채택됐다. 이 자리에서 서 변호사는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된 후 사저에서 짐을 싸고 있을 때 관저를 방문한 적이 있다”고도 말한 바 있다.
봉 변호사의 민정수석 지명을 두고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일부에서는 “검찰 고위직 출신이기 때문에 개혁을 강조하는 이번 인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도 제기하고 있다. 친민주당 계열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서도 ‘하필 김앤장 출신인 봉 변호사를 임명하느냐’는 우려를 표하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해 한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실 주요 공직자들에 대한 인사는 해당 인물들의 출신과는 무관하다”며 “오직 개혁과 민생을 위한 정부의 결정인 만큼 믿고 지켜봐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봉 변호사가 김앤장 출신이지만 정치 활동 경력이 없기에 전략적 지명이었다는 평도 존재한다. 앞서 이 대통령은 같은 검찰 출신인 오광수 변호사를 초대 민정수석으로 지명할 당시 ‘이이제이’를 강조한 바 있다. 검찰과 법조계 전반에 대한 이해가 깊어야 검찰 개혁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6월 29일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겸손하고 온화한 성격으로 신망이 두텁고 정책 기획 역량이 탁월하다”고 봉 변호사 인선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한 법조계 인사는 “아직은 확언할 수 없으나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김앤장 중심의 전통적 권력 구도에도 구조적 변화가 생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