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준 전 국민의힘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통계조작 의혹을 가장 먼저 제기한 인물이다. 평생 노동경제학자로 살며 통계를 다룬 유 전 의원은 2015년 통계청장에 임명돼 문 정부가 들어선 뒤인 2017년 7월 임기를 마쳤다.
그가 퇴임하자마자 정부는 통계와 싸우기 시작했다. 소득분배 지표가 악화되자 통계청장을 교체했다. 청장이 바뀌자 감쪽같이 빈곤층이 줄어들었다. 그런가 하면 통계상 비정규직이 급증하자 “정규직이 자신을 비정규직이라 착각하고 응답했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을 내놨다.
유 전 의원은 매번 이를 조목조목 반박했고, 통계조작 문제의 저격수가 되어 21대 국회에 입성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4월 23일 주간조선과 만나서도 특히 소득통계 조작과 관련한 무수히 많은 에피소드를 풀어놓았다. 유 전 의원은 “감사원이 이번에 지적한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라며 ”문 정부는 정책 실패를 부정하려고 통계에 손을 대기도 했지만, 애초 왜곡된 통계를 근거로 정책을 내놓기도 했다”고 했다.
- 문재인 정부는 왜 이런 무리를 한 것인가. “소득주도성장의 실패를 가리려는 것이다. 그런데 소득주도성장은 ‘노동소득분배율의 하락’을 전제로 하는데, 이것부터 잘못됐다는 것을 먼저 짚어야 한다. 한국은행이 집계하던 노동소득분배율은 임금노동자의 노동소득을 국민소득(GNI)으로 나눈 것이다. 그런데 문 정부의 초대 경제수석이던 홍장표는 분모를 국내총생산(GDP)으로 바꿔 계산했다. 이렇게 되면 분모에 R&D(연구개발) 투자, 감가상각분을 의미하는 ‘고정자본소득’이 산입된다. 이것은 투자분이지 누군가 벌어들인 돈이 아니다. 이렇게 통계를 내면 노동소득분배율이 현저히 줄어들어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것처럼 해석된다. 이것을 가지고 소득주도성장을 주장한 것이다. 왜곡된 통계로 정책을 잘못 짰다.”
- 소득주도성장의 실패로 통계를 왜곡했다는 뜻은. “소득주도성장은 원래 국제노동기구(ILO)의 임금주도성장(Wage-led-growth) 이론을 따온 것이다. 임금 인상을 기반으로 하는데, 임금근로자가 국민 대부분을 차지한다면 괜찮은 정책이다. 그런데 한국은 자영업자가 전체 취업자의 4분의1에 달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의 2배가 넘는다. 문 정부는 들어서자마자 최저임금을 대폭 올려버렸다. 그런데 그들에게 임금을 줄 자영업자를 위한 수단은 임금주도성장에 없다. 취업자들은 이득을 보지만 신규 취업자나 자영업자는 망할 수밖에 없는 정책을 써 놓고, ‘소득분배를 위해 소득주도성장이란 좋은 정책을 썼는데 왜 이런 결과가 나오냐?’라고 생각한 것이 발단이었을 것이다.”
- 새 정부가 들어서고 두 달이 지난 2017년 7월 11일까지 통계청장으로 재임했다. 감사원 보고서를 보니 이 시기부터 이미 청와대에서 ‘소득통계가 나빠졌다’며 통계청 차장을 불러들여 혼을 냈다. 알고 있었나. “2017년 5월 18일, 장하성 정책실장 취임 3일 전이었다. 그의 주장을 바탕으로 한 기사가 하나 나왔는데 내용이 이랬다. ‘지난 26년간 한국의 GDP를 분석해보니 가계총소득 증가율은 186%인데 가계평균소득은 90%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가계총소득에서 소득상위계층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대기업이 움켜쥔 소득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상한 주장이라서 반박 보도자료를 냈다. 일단 한국은 핵가족화로 가구 수가 증가했다. 자연히 가계 ‘평균’ 소득은 증가율이 낮아질 수밖에 없으니 계층 간 불평등 확대의 논거는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가계평균소득 증가율과 가계총소득 증가율은 이름이 비슷해 보일 뿐 조사 시점, 작성 범위, 개념 등이 다르다. 비교할 수 없는 것을 비교한 주장이었다. 그랬더니 5월 21일 정책실장이 되자마자 통계청에 있는 누구든 당장 들어오라고 했다더라. 다녀온 부하들이 나에게는 나중에 보고했다. 몹시 화가 나서 ‘아무리 정권이 바뀌었다지만 내가 청장으로 있는데 날 부르라고 해라, 앞으로도 가지 마라’고 했다.”
- 그 뒤에도 과장급이든 국장급이든 수시로 불러 통계를 요구하고 받아냈다. 청와대가 하위부처 공무원을 직접 부르는 일이 자주 있는 건가. “아니다. 후임 황수경 청장도 그런 걸 허용할 성격이 아니다. 그다음 강신욱 청장 때는 그냥 수시로 통계를 줬다. 자료제출 절차가 정해져 있기도 하거니와 개인정보가 포함된 원자료는 줘서는 안 되는데 그걸 줬다. 내가 있을 때는 박근혜 정부 때도 일절 못하게 했다. 이를테면 농림수산부가 쌀 생산량 추계분을 먼저 보여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나중에 초과생산 일정부분을 정부가 구입해 주는데, 얼마나 구입할 것인가에 따라 추후 가격이 결정되니까. 나는 웃기지 말라면서 안 줬다. 그랬더니 자른다는 얘기가 나오더라. 그래서 ‘통계 일을 정상적으로 하다가 잘리면 영광으로 알고 살겠다’고 했다.”
- 홍장표 수석이 2018년 1분기에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의 원자료를 불법 유출했는데. 이 배경이 뭔가. “2017년 4분기의 ‘소득 5분위 배율(최상위 20%의 평균소득을 최하위 20%의 평균소득으로 나눈 것으로, 수치가 낮을수록 불평등도가 낮다)’ 지표가 좋았다. 그런데 이것은 착시효과였다. 2017년 추석은 10월에 있었기 때문이다. 명절엔 경기가 좋아진다. 그런데 다음해 1분기 지표가 최악이었다. 그래서 홍 수석은 해당 통계 원자료를 빼내 노동연구원과 보건사회연구원에 분석을 맡긴다. ‘임금근로자’만 쏙 빼내 통계를 새로 만들었다. 이 사람이 자영업자인지 취업한 사람인지를 알려면 개인이 식별이 돼야 한다. 물론 불법이다. 당시 통계청 표본과장에게 (자료를 줬냐고) 물었더니 시치미를 뚝 떼더라. 이걸 가지고 문 대통령이 ’10%는 소득이 나빠졌지만 90%는 소득이 개선됐다’고 발표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후 통계 표본을 바꿨다는 것이다. 2019년 1분기에 발표한 소득분포를 보면, 이례적으로 조사 결과가 두 번 있다. 황 전 청장 때 만든 표본으로 시행한 조사에서 200만원 미만 가구 비율은 32.9%다. 그런데 강신욱 청장으로 교체되고 시행한 조사에서는 25.8%가 된다. 7.1%가 줄어든다. 왜 다르냐고 물었더니, ‘주택공시가격’을 기준에 추가해서 표본을 바꿨다더라. 공시가격을 포함시키면 집 없는 사람들을 제외했다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답을 못하더라.”
- 강신욱 전 통계청장이 바로 그 보건사회연구원 출신이다. 홍 수석이 분석을 맡겼던. “착한 친구지만…. ‘정책이 아니라 통계가 잘못됐다고 정부 듣기 좋은 소리를 하면 네가 통계청장으로 간다, 그러니 자꾸 그런 말 말라’고 경고했었다. 그랬더니 ‘나는 소득주도성장위원회 사무총장으로 갈 것이니 그럴 리가 없다’더라. 나중에 국회에서 대정부질문할 때 그 얘기를 했더니,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이 없다고 하더라.”
- 통계 때문에 정책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어 버릴 수도 있는 것인데. “그렇다. 우리가 다른 나라에 비해 소득 불평등도가 높은지 낮은지, 정책의 효과가 어떤지는 조세 재정 분배 정책을 결정할 때 매우 중요하다. 성장을 중시할 것인지, 분배를 중시할 것인지를 택하는 것은 국가경제의 중대한 사항인데 이런 통계를 조작했으니 심각한 것이다. 정책이 이상하면 원인을 분석하고 수정보완하면 되는데, 문 정부는 ‘개념’만 앞섰다. 소득주도성장은 사실 분배정책이다. 소득분배가 좋아지게 최선을 다 했는데 어떻게 나빠졌느냐는 건데,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최저임금만 올리니 자영업이 무너져 신규 취업이 안 됐고, 제조업과 조선업이 구조조정에 들어선 상황이었다. 안 받아들인 것이다.”
- 이런 일이 다시 없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단 통계청이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한다. 처급으로 승격시키고 청장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 덴마크나 미국도 5~10년 한다. 지금은 공무원 출신이 청장이지만 통계를 아는 학자 출신이 해야 한다. 소득분배통계도 시급히 보완해야 한다. 한국의 소득불평등을 측정하는 표본 틀이 흔들리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