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4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들어서고 있다. photo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 이후 ‘개헌’에 대한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침묵이 깨졌다. 지난 4월 9일 당 대표직을 내려놓은 이 전 대표는 지난 4월 7일 “개헌은 필요하지만, 지금은 내란종식이 먼저”라고 말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전날 “대선일에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시행하자”고 제안한 것에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이다.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조기대선에서 절대상수가 된 이 대표는 ‘탄핵 찬성 대 반대’ 프레임으로 선거를 치르고 싶은 것”이라며 “탄핵 찬반이 x축이라면 여기에 도전하는 세력은 ‘개헌 대 반개헌’의 구도로 y축을 만들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개헌 대 반개헌의 구도는 ‘반이재명 대 이재명’으로 이어진다. 이 전 대표만 개헌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는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내란 종식과 개헌… 대선 프레임 싸움

그동안 보수 잠룡들은 개헌안을 이 전 대표에 대한 견제책으로 활용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다음 대통령은 자기 한 몸, 자기 권력이 아니라 국민이 먼저여야 한다”며 “임기를 3년으로 줄여서라도 반드시 구시대를 끝내고 개헌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고 강조했다. 최근 출사표를 던진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국민통합 대개헌을 추진해 대통령 권한과 국회 특권을 축소하고, 대통령 4년 중임제와 중대선거구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을 비롯해 오세훈 서울시장과 유승민 전 의원도 3년 임기단축 후 4년 중임제 개헌을 제안한 바 있다.

비명계(비이재명계) 대권 주자들도 개헌안을 내세워 이 전 대표에 대한 공세를 강화했다. ‘개헌 대통령’을 표방한 김두관 전 민주당 의원은 “‘나중에 하자’는 ‘하지 말자’와 사실상 같은 말”이라며 이 전 대표를 압박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도 “분권형 4년 중임제 등 공감대가 큰 사안은 대선과 동시투표하고, 국민적 동의가 더 필요한 부분은 대선 공약을 통해 단계적으로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도 “개헌이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가는 근본적인 길”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불출마를 선언한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내란 수습을 핑계로 개헌을 방관하는 태도는 안일하다”며 “개헌과 내란 종식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다만 이 전 대표는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게재하는 것과 계엄 요건을 강화해 친위 군사 쿠데타를 할 수 없게 하는 것은 국민의힘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며 “국민투표법이 개정돼 현실적으로 개헌이 가능하면 (이는) 곧바로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짧은 조기대선 국면에서 권력구조까지 개편하는 개헌을 추진하기는 어렵지만 ‘원포인트 개헌’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한 비명계 관계자는 “지금 정치권에서 나오는 개헌론은 ‘대통령 권력 분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당선 가능성이 높은 이 전 대표가 받을 이유가 없다”며 “이 전 대표는 개헌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개헌안에 담길 내용을 수정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권력구조 개편을 광주 정신 헌법 수록, 수도 이전 등의 논점으로 바꾸려는 정치적 전략”이라며 “결국 제왕적 대통령제를 건드리지 않는 개헌은 가능하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양문석 민주당 의원은 우 의장의 개헌 기자회견 이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개헌? 개나 줘라. 제발 그 입을 닥쳐라”라며 “당신들이 윤석열과 뭐가 다른가?”라고 썼다. 민형배 민주당 의원은 SNS를 통해 우 의장 사진을 공유하며 “개헌을 이리 서둘러야 하는 이유를 충분히 제시하지 못하면 다른 꿍꿍이가 있구나 오해하겠다”고 적었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도 우 의장을 향해 “TPO(시간·장소·상황)에 맞지 않는 국회의장 놀이를 중단하시고, 더는 개헌 주장으로 국민의 분노를 사지 않기를 바란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개헌 요구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 전 대표가 개헌을 외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다른 대권 주자들이 주장하는 개헌 논의에 이 전 대표가 합류한다면, ‘개헌 블랙홀’에 빠질 우려가 있다. 이 전 대표 입장에선 내란 종식 프레임을 가져가면서 개헌 동력을 최소화하는 것이 대선 구도 프레임을 바꾸는 전략이 될 수 있다. 친명계가 대통령 파면 이후 개헌론을 다시 띄운 우 의장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가면서도 ‘이재명 대표가 개헌의 필요성에는 공감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이재명은 대통령 5년 하고…”

친명계 좌장으로 불리는 정성호 의원은 지난 4월 7일 SBS 라디오에서 “이재명 대표는 4년 중임제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고 말씀하셨다”며 “국회의원 선거가 중간평가가 돼야 한다. 이번에 당선된 대통령이 임기 5년을 채우고 2030년에 지방선거와 (대선을) 맞추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총선과 대선을 함께 치르려면 차기 대통령의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해야 하는데 이같은 방식 대신 5년 임기를 채우고, 다음 대통령 때부터 4년 중임제를 적용하자는 것이다.

한 민주당 다선 의원도 “시기의 문제일 뿐 이 대표는 개헌에 반대한 적이 없다”며 “(이 전 대표가) 집권한 뒤 1년 정도 개헌을 준비하고 다음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를 하는 방안이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한 그림”이라고 말했다. 2026년 지선 때 개헌 관련 투표를 하고, 2030년 지선부터 대선과 함께 진행하자는 것이다.

이 전 대표는 조만간 4년 중임제가 포함된 ‘개헌 로드맵’을 발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개헌 국민투표 동시 진행에는 선을 그었지만, 정치권의 개헌 압박을 대선 공약을 통해 벗어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개헌이 성공적으로 추진될지에 대해선 부정적 시각이 많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 자문위원이었던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력 대권 주자일수록 자신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개헌을 얘기하더라도 일종의 ‘립서비스’ 차원일 수밖에 없다”며 “역대 국회의장들은 다 개헌을 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운 대통령 후보는 당선되고 나면 다 소극적이 되지 않았나”라고 했다.

우 의장이 대선·개헌 동시 투표를 띄운 다음날 민주당은 ‘세종 수도 이전’을 꺼내들었다. 지난 4월 7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을 재추진하기로 했다. 행정수도 이전은 노무현 전 대통령 공약 사업이었지만 2004년 헌법재판소가 ‘대한민국 수도는 서울’이라는 관습헌법을 이유로 위헌 판결을 내리면서 무산된 바 있다. 헌재는 ‘서울=수도’가 관습헌법이고, 관습헌법의 효력은 성문헌법과 동일하기 때문에 관습헌법을 변경하려면 헌법개정절차를 따라야 한다며 법률로 수도를 이전하는 것은 헌법 제130조 제2항이 규정하는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이 대표가) 대선에서 개헌 이슈를 최소화하기 위해 세종 수도 이전 논의를 메인으로 끌어올린 게 아닌가 싶다”며 “제왕적 대통령을 할 수 있는 타이밍에 그 힘을 빼는 개헌을 하고 싶겠느냐.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안 하고 싶어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준현·복기왕 등 충청권 의원들은 지난 3월 이 전 대표의 지시로 ‘행정수도 이전 방안’ 검토 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에는 대통령 집무실 세종 이전과 국회 본원 완전 이전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입법부와 행정부 기능을 모두 세종으로 내려보내자는 것이다. 내용을 보고받은 이 전 대표는 법안 재추진을 제안했다고 한다.

민주당의 충청권 의원은 “이 대표가 (수도 이전 관련) 위헌 문제에 대해서 원포인트 개헌이라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5·18 정신 헌법 수록, 계엄 요건 강화 등 쉽게 합의가 되는 부분을 먼저 하고, 권력구조 개편 등에 관해서는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 2차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전 대표가 차기 대통령이 된다면) 임기가 끝나기 전에 세종에서 근무한 첫 번째 대통령으로 기록되는 것도 굉장히 의미 있지 않겠나”라고도 했다.

모두가 개헌을 내세우는 가운데 ‘세종 수도 이전’은 이 전 대표가 ‘손해 보지 않는 전략’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장우영 교수는 “수도 이전이 불가능하더라도 집무실 이전은 가능하지 않겠나. 청와대를 들어가기도, 용산 대통령실을 집무실로 하기도 애매한 상황에서 대선 후보들은 대통령 집무실 공약을 낼 수밖에 없다”며 “이 대표는 일종의 의제 선점을 통해 주도권을 쥐는 데 성공했다. 수도 이전 관련해 헌법소원이 제기되더라도 (조기대선을 치르는) 두 달 이내에 판결이 나올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세종 집무실 실현 가능성은?

세종에서 근무하는 한 공무원은 “세종에 국회의사당 분원을 추진하는 것처럼 대통령 제2집무실을 세종에 두는 것도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며 “청사 건물 내에 대통령 집무실 공간을 마련할 수 있고, 대통령 집무실을 지을 수 있는 부지도 비어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위헌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물리적으로는 세종에 대통령 집무실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에 복귀하든, 세종으로 가든 현실적으로 당분간은 차기 대통령이 용산 집무실을 쓸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추진됐던 대통령 집무실 이전 때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의 이전 확정 발표 후 공사가 마무리되기까지 3개월 넘게 소요됐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지난 4월 4일 “대통령 집무실은 어쩔 수 없이 누가 되든 용산에 가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강력한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이 전 대표가 외면하는 권력구조 개편은 어려울 수 있어도 강하게 추진하는 세종 수도 이전은 가능하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한 친명계 관계자는 “이 대표가 의지를 가지고 드라이브를 걸면 당내 반대할 사람이 없어서 일이 잘 진행된다”며 “일례로 상법 개정안도 박찬대 원내대표실에서 반대했는데 이 대표가 하자고 하니까 바로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우 의장은 지난 4월 9일 “대선 이후 (개헌에 대한) 본격 논의를 이어가자”며 사흘 만에 ‘대선·개헌 동시 투표’를 철회했다. 우 의장이 입장을 선회하면서 개헌 동력에 급격하게 힘이 빠지는 모양새다. 그는 대외적으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자신의 권한을 벗어나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을 지명함으로써 국회를 무시하고 정국을 혼란에 빠뜨렸다. 안정적 개헌 논의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지만 민주당 극렬 지지층의 반발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강성 지지자들은 개헌을 요구하는 우 의장에게 ‘개헌 수괴’ ‘수박’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문자 폭탄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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