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3월 12일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3월 19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중앙선대위 발대식 및 공천자 대회’에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번에 지면 윤석열 정부는 집권하고 뜻 한번 펼쳐보지 못하고 끝나게 될 것”이라며 “죽어도 서서 죽겠다”고 말했다. 최근 국민의힘 위기론이 부상하는 가운데 나온 메시지로 과거보다 비장함이 묻어 있으며, 보다 직관적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지난 1월 “꽃 피는 봄이 오면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말한 것과 비교해보면 메시지의 차이가 확연하다.

메시지 변화만큼이나 대응도 더 단호해졌다. 한 위원장은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명단을 둘러싸고 친윤계와 갈등이 빚어지자 물러서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윤석열 대통령의 친구인 주기환 전 국민의힘 광주시당위원장 공천 문제를 둘러싼 대응이다. 주 전 위원장은 지난 3월 18일 발표된 명단에서 24번을 받아 사실상 당선권 밖을 배정받자 이에 반발해 비례대표 후보에서 사퇴했다. 검찰 수사관 출신인 주 전 위원장은 광주에서 오래 근무한 마당발 인사로 윤 대통령이 광주지검 특수부에 근무하던 2003년부터 함께 일하며 알게 됐다. 검사와 수사관 사이지만 나이가 같아 사석에서는 말을 놓고 편하게 지내는 몇 안 되는 수사관 출신 측근으로 꼽힌다. 검찰 내부에서도 두 사람 관계는 검사와 수사관이 가깝게 지내는 대표적 사례로 유명하다. 한 위원장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윤 대통령은 비례대표 후보에서 사퇴한 주 전 위원장을 지난 3월 21일 대통령 민생특보에 임명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앞줄 왼쪽 셋째)이 지난 3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2대 총선 중앙선대위 발대식 및 공천자대회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친윤 검찰 수사관 출신…” 이례적 반박

주 전 위원장이 사퇴하자 친윤계 인사들은 한 위원장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 등은 호남홀대론 등으로 주 전 위원장의 배제를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이 의원이 현재 당정 가교역할을 한다는 것이 여권 내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지난 1차 당정 갈등 때도 이용 의원과 더불어 이철규 의원이 대통령실의 입장을 대변했고, 이 의원이 중재에 나서는 듯한 발언을 하면서 한 위원장은 대응을 멈추고 대통령을 만났다. 이 의원이 갖는 상징적 의미를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위원장은 이번에는 그와의 대결을 멈추지 않았다. 이 의원의 비판이 있자 한 위원장은 곧바로 “친윤 검찰 수사관 출신(주기환)을 당선권에 배치하면 국민들이 어떻게 보겠느냐”고 반박했다. 한 위원장이 ‘친윤’이란 표현을 직접 썼다는 것이 시사하는 바는 작지 않다. 이런 모습은 1차 당정 갈등 때와는 달라진 모습으로 볼 수 있다. 황상무 시민사회 수석 사퇴나 이종섭 주호주대사 귀국과 관련해서도 한 위원장은 발빠르게 대응했다.

한 위원장의 이런 변화는 결국 선거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구심력을 잃지 않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이번에 지면 윤석열 정부는 집권하고 뜻 한번 펼쳐보지 못하고 끝나게 될 것”이라는 말은 앞으로도 그가 어느 정도 갈등을 감수하더라도 주도권을 쥐고 나가야 하는 이유를 대통령실에 호소하는 것처럼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총선 민심 밑바닥에 여전히 ‘정권심판론’이 짙게 깔려 있고, 중도층에서 정권심판론이 확산하면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선거가 어려워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한 위원장은 중도층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 왔다. 한 위원장은 이번 총선에서 “호남 포기를 포기했다”며 ‘서진(西進)정책’도 강조해 왔다. 국민의힘은 이번 총선에서 16년 만에 호남 전 지역구에 후보를 공천하고 ‘호남 지역구 3석’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한 위원장의 서진정책은 중도층 외연 확장 차원에서 필연적이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 임기 말 레임덕 속에 치러진 19대 총선에서 당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김종인 박사를 영입해 ‘경제민주화’로 중도 확장에 성공, 43.3%의 득표율로 152석을 획득해 승리한 바 있다.

한동훈의 서진정책은 20대 대통령선거 당시 윤 대통령의 ‘좌클릭’ 전략도 떠올리게 한다. 윤 대통령은 2021년 11월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된 뒤 첫 지방 행보로 호남을 방문했고, 광주를 찾아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 옹호 발언’ 논란에 대해 사과했다. 또 당시 대선 후보 중 처음으로 제주를 찾아 4·3사건 피해 유족에 대한 보상 문제 해결을 약속하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언급했다. 그 결과 윤 대통령은 호남(광주 12.72%, 전남 11.44%)에서 두 자릿수 득표율을 기록하며, 보수정당 대선 후보 가운데 역대 최고 득표율로 당선된 바 있다.

한 위원장은 지난 3월 15일 호남(전남 순천·광주·전북 전주)을 방문했고, 광주에서 “최근 저희 공천 과정에서 광주 5·18 민주화 관련 이슈들이 있었다. 오히려 그 과정을 통해 저와 우리 당이 5·18 민주화항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느 정도로 존중하는지 선명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호남 방문 전날 밤 대구 중·남구에 공천했던 도태우 변호사에 대한 공천을 전격 취소한 데 대한 언급이었다. 도 변호사는 2019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5·18 북한 개입설을 긍정하는 발언으로 논란이 됐다. 공관위는 3월 12일 도 후보의 두 차례 사과에 공천 유지를 결정했으나, 하루 만에 결정을 뒤집었다. 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을 폄하한 과거 발언이 추가로 드러났다는 이유에서다. 공천이 취소된 도 변호사는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월 4일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민의힘 광주시당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스포트라이트 尹 향하면 심판론 부상”

전문가들은 한 위원장의 서진정책이나 중도층 외연 확장 시도를 높게 평가한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현 시점에서 국민의힘의 과제는 집토끼(고정 지지층)를 다지는 게 아니다”라며 “한 위원장이 중도층·부동층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은 아주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선거에서 한 달은 아주 긴 시간이다. 하루 만에 여론이 흔들릴 수가 있다. 이미 국민의힘과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각각 40% 정도 집결돼 있고, 이들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여야가 매우 팽팽한 상황이기 때문에 나머지 20%의 중도층·부동층 표가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이번 선거의 승패가 갈린다”며 “아직 결심하지 않은 이들의 표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 위원장에게 향하던 스포트라이트가 윤 대통령으로 이동하는 순간 다시 ‘정권심판론’이 부상했다. 다만 한 위원장에 의해 다시 마음이 돌아설 지지자들도 있을 것으로 본다. 또다시 윤 대통령과 각을 세워 황상무 수석을 아웃시키고, 이종섭 대사를 불러들이는 것은 한 위원장만 할 수 있는 것”이라며 “한 장관이 조기에 문제를 마무리한 것은 아주 잘한 것이라고 평가한다”고 전했다.

총선에 나서는 국민의힘 후보들은 한 위원장을 지지하고 있다. 한 수도권 출마자는 “지금 용산발 악재로 국민의힘 상황이 바닥을 쳤다. 이제 다시 올라가야 하는데, 얼마나 올라갈 수 있을지는 한 위원장 역할에 달렸다. 한 위원장의 ‘대권 행보’를 운운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본다. 지금 다 죽게 생겼는데 어떻게 대선을 언급할 수 있나”라며 “친윤, 찐윤이야말로 가만히 계셔야 한다. 상황이 힘들지만 돌파구를 찾으리라 본다. 지금은 한 위원장만 있는 게 아니라 수도권 후보들이 모두 한 마음 한 뜻”이라고 전했다.

마땅치 않은 국면 전환 터닝포인트

다만 한 위원장의 이런 정책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여당이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터닝포인트가 있어야 하는데 야당의 실언과 같은 반사이익이 아니라면 내부적으로 이를 헤쳐나갈 만한 뾰족한 수가 마땅치 않아 보인다. 그래서 여권 일각에서는 뚜렷한 정책 이슈로 승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정책 이슈로 정권심판론을 넘어설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인천 지역 한 중진 의원은 “메가서울, 그린벨트 해제, 재개발 완화 같은 이슈들보다 더 뚜렷한 정책 이슈가 뭔지 모르겠다”며 “정책 이슈를 내놓지 못해서 어려운 선거인지 잘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결국 선거가 점점 어려워지게 되면 여당 내부에서는 ‘대통령실 때리기’로 차별화에 나서는 과거의 전례들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사실 한 위원장의 마이웨이는 집토끼 잡기 측면에서는 위험 부담이 크다. 당장 강성 보수층 사이에서는 한 위원장의 서진정책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도 변호사의 공천 취소를 전리품처럼 광주에 헌상한 데 대해 대구·경북 지역에서 역차별을 느낄 것이란 주장이다. ‘일베(일간베스트)’ 언급이나 도태우 변호사 공천 번복이 오히려 국민의힘 강성 지지자를 떠나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위원장은 지난 3월 1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민의힘은 극우공천”이라고 말한 데 대해 “우리 중 일베 출신이 누구 있나”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도 변호사가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태 당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일베 게시물을 여러 번 게재한 사실이 확인됐고, 이후 과거 발언이 논란이 돼 결국 공천이 취소됐다. 이와 관련 차명진 전 의원은 지난 3월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중도표 잡겠다고 집토끼를 내친다. 중도라는 게 존재하기는 하나. 도태우 쫓아냈다고 한동훈 약발이 떨어진 게 다시 살아날까”라며 한 위원장을 맹비난했다.

한 위원장의 서진정책이나 이번 공천을 그의 권력의지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윤 대통령의 지지자이자 멘토로 알려진 신평 변호사는 지난 1차 당정 갈등 때부터 “일종의 궁정 쿠데타”라며 한 위원장에 대해 쓴소리를 이어오고 있다. 신 변호사는 최근 한 위원장의 행보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했다. “한 위원장은 모택동(마오쩌둥)에 의해 권력의 출세 가도에 올랐다가, 모택동을 제거하려고 했던 임표(린뱌오)와 비슷한 측면이 많다. 한 위원장에게 총선은 대선 행보에 불과했다. 당에서 완전히 독재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국민의힘도, 민주당도 자당 출신 대통령에게 당에 상당히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 한 위원장이 교활한 점은, 당헌에서 이를 허용하고 있는데도 그것을 완전히 부정해버렸다는 거다. 과거 모든 전례에서도 자당 출신 대통령이 당과 긴밀히 협력해 비례대표 후보를 결정했다. 자신의 광주 방문에 맞춰 심야에 급하게 도태우 변호사 공천을 취소한 것 역시 한 위원장의 ‘임표’ 면모를 보여준다.”

총선 승패에 따른 거취 시나리오

그렇다 보니 총선 이후의 당정 관계, 구체적으로는 한 위원장의 거취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박상병 평론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총선의 승패에 따라 달라질 거라 본다”며 “국민의힘이 승리할 경우 한 위원장은 내쳐질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이 다시 당을 장악하고, 국정운영의 키를 쥐고 그동안 못했던 국정운영의 성과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그는 “반면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패배할 경우 윤 대통령이 조용히 국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한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수세국면에서 국민의 이목을 한 위원장에게 넘길 것”이라고 예측했다.

박창환 정치평론가는 “미래권력을 이렇게 빨리 당겨쓰는 사례는 없었다”며 이번 2차 당정갈등을 이렇게 분석했다. “1차 당정갈등 봉합 당시에도 총선 승패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은 향후 미래권력과 현재권력의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였다. 이번에는 민주당 공천 파동이 수습된 절묘한 타이밍에, 국민의힘 공천 막바지에 2차 당정갈등이 불거졌다. 용산의 문제로 한 위원장이 쌓아 놓은 공든 탑이 무너졌다. 그럼에도 용산이 버텨 당 지지율이 급락했고, 이후 비례 공천 문제로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이 국정운영과 공천을 둘러싸고 주도권 경쟁을 하는 모양새가 됐다.” 한 위원장의 앞날에 대해서는 “흔히 ‘하늘에 태양이 두 개 일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총선 승패와 관계없이 여권이 격랑에 휩싸일 것이라고 본다. 한 위원장은 다음 대권 후보로 도장을 박아버린 거다. 지금까지는 굉장히 짧은 시간에 한정된 주제를 놓고 싸운 거라면, 총선 이후에는 다방면에서 갈등이 펼쳐질 것이라 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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