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한 장 32. 김인재의 ‘비정형 도시’ 사진들

누군가 나를 훔쳐 본다. 아니 내가 저 여자를 훔쳐본다. 도시에 사는 우리는 서로를 훔쳐 본다. 어깨가 드러난 긴 머리의 여성이 살짝 보이는 모습보다 전주의 거친 모습을 조리개를 조여 긴장감을 증폭시켰다. 서울 한남동, 2025 / 사진가 김인재

도시를 찍는 건 이제 썩 당기지 않는다. 익숙한 데다 이미 다 찍어서 다큐든 예술이든 의미도 그림도 흘러넘친다. 거리에서 카메라 들기도 겁난다. 가로수나 하늘을 찍으려 해도 누가 지나가다 시비 걸지는 않을까 살핀다. 전화기였던 휴대폰이 사진기가 된 후, 거리에서 진짜 카메라를 들면 사람들의 경계의 대상이 됐다. “몰카범은 이런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다니지 않아!”라고 외치고 싶다. 사람들을 피하면 요란한 광고와 어지러운 간판들, 흐르는 차, 어딜 가도 비슷한 빌딩과 개성 없는 아파트들까지 정리 안 된 피사체만 가득한 곳이 우리가 사는 도시다.

눈에 띄는 요소가 곳곳에 숨어 있고, 사진가는 도시 풍경 속에 그것을 찾아 낸다. 경기도 판교, 2022 / 사진가 김인재

그런데 이런 풍경을 일부러 찍어 보여주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리는 사진가 김인재(64)의 ‘비정형 도시’에서는 그런 어지럽고 복잡한 도시들을 낯설거나 아름답게 보여준다. 사진가는 2022년부터 올해까지 서울, 대구, 마카오, 베를린 등을 다니며 촬영한 사진 39점을 이번 전시에 걸었다. 사진 몇 장을 보자.

거대한 아파트의 숲, 이젠 익숙해진 밀집된 주거 풍경. 홍콩, 2024 / 사진가 김인재

구석에 숨어 누군가를 훔쳐보는 여성은 옥외 광고판인데, 광고 속 여성이 더 그렇게 느껴지는 건 복잡한 전주(電柱)와 나뭇가지, 건물의 기둥을 절묘하게 앞으로 걸고 조리개를 조여 찍었기에 깊은 심도로 거리감을 없앴다. 도심의 복잡한 구조물을 피하지 않고 일부러 드러내는 대신 광고판 여성을 살짝 걸쳐서 보여주면서 궁금증을 던졌다.

운하가 수로로 이어지는 듯 보이지만 벽에 걸린 사진이다. 아치 무늬와 사진 속 다리가 겹쳐 보이고 수로가 있어 착시 효과를 가져온다. 중국 마카오, 2024 / 사진가 김인재

얼굴에 흰 칠을 한 남자가 건물 난간에서 휴대폰을 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건물 앞으로 작은 수로처럼 물이 흐르고 건물 옆으로도 베네치아 운하처럼 수로가 이어진다. 잠깐, 다시 보니 진짜가 아니라 사진 같은데..., 전시장에서 사진가에게 직접 물었더니, 건물 옆에 걸어놓은 사진이라고 했다. 남자가 서 있는 실제 건물의 창문과 기둥, 파사드가 벽에 걸린 사진 속 운하처럼 비슷하게 보이는데다 앞에 보이는 수로까지, 여기에 일부러 사진가가 그림자가 없는 시간을 고려해서 운하 사진 속 분위기와 비슷한 조도를 맞춰 촬영했기에 그렇게 보였다.

푸른 구름과 오케스트라 광고 사진 사이로 보이는 선글라스 낀 남자는 버스의 기사다. 사진처럼 도시 풍경은 딱 한번 스치며 흐른다. 서울, 2023 / 사진가 김인재
쇼윈도에 비춘 디스플레이인가 실제 표범인가, 대구, 2022 / 사진가 김인재

이렇게 김인재의 사진들은 건물의 시각적인 구조물이나 광고, 사진들을 일부러 가리거나 피하지 않고 최대한 드러내서 같이 묶어 보여준다. 오케스트라 연주가 보이는 광고판 위로 푸른 하늘에 뭉게구름이 보이면, 지나가는 차에 반사된 모습이라고 보이는데 좀 더 살펴보면 선글라스를 낀 버스 기사가 카메라를 보고 있다. 놀라운 부조화 속에서 문득 이 모습은 오직 단 한 번 스쳐가는 도시의 모습인 것을 알게 한다.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 한 장면 같다. 중국 홍콩, 2024 / 사진가 김인재
서울 이태원동, 2025 / 사진가 김인재

거리에서 사진을 찍다가 사람들과 다투지 않았는지 사진가에게 물어보았다. 김 씨는 오히려 자신이 카메라를 들고 도시의 모습을 찍는 사진가라는 것을 드러낸다고 했다. 그래서 누군가 “왜 찍나, 무엇을 찍냐”고 물어오면 자신이 촬영한 사진들을 올리는 인스타그램을 보여주면서 설명한다고 했다. 그러면 대부분 알아듣고 가지만 가끔 털끝이라도 찍었으면 당장 지우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빈 집 연작, 서울 개포동, 2018 / 사진가 김인재
굴뚝에 관한 보고서, 연작, 2021 / 사진가 김인재

건물의 통신망을 설치하는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사진가는 지난 2018년 개포동 아파트 재개발 지역을 다니며 버려진 소파를 모아 촬영한 사진들로 개인전을 열었다. 이후 전국의 버려진 공장을 다니며 굴뚝을 위주로 촬영한 사진들로 2022년에 전시를 했다. 이번 전시에도 서울 한남동 모습이 많은 것은 자신이 오랫동안 일하던 사무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역광으로 남자의 실루엣을 의도적으로 계단 그림자와 마주하게 했다. 서울 한남동, 2024 / 사진가 김인재
포스터 사진 속 배우의 얼굴도 프레임을 살리는 오브제가 된다. 서울 한남동, 2024 / 사진가 김인재

김인재는 도시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갇혀 있거나 답답한 공간이 아니라 “예기치 못한 상황과 풍경이 오고 가는 상상의 공간”이라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그래서 비정형의 모습이라고 했다. 전시는 28일까지.

사진가 김인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