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한 장 31. 김보섭 사진가의 ‘송도-사라진 갯벌’ 사진전

조개를 잡고 갯벌에서 나오는 사람들 등 뒤로 해가 지고 있다. 송도는 썰물이면 이렇게 끝없는 갯벌이 펼쳐졌다.1997/ 사진가 김보섭

65층 포스코타워 등 초고층 빌딩과 국제학교, 첨단 연구소들이 밀집한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국제도시는 원래 갯벌이었다. 갯벌이던 바다가 1990년대 말부터 매립되고 서울 여의도의 17배가 되는 땅이 생겨 오늘날 모습이 되었다. 과거에 이곳이 통발로 숭어를 잡고 갯벌에서 조개를 캐던 바다였다는 이야기는 오래된 민담처럼 들린다.

맛(조개의 종류)을 캐기 위해 갯벌을 깊이 파는 주민, 1997/ 사진가 김보섭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보섭 사진가(71)는 1973년 고등학생 때 송도의 친구 집에서 따뜻한 밥 한 끼를 얻어먹은 기억이 있다. 시간이 흘러 1996년에 다시 만난 친구와 옛집을 찾아갔지만 옛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친구 어머니가 차려준 따뜻한 밥상의 추억 속 시골 풍경은 도시로 변하고 있었다.

송도 고잔어촌계 사람들, 1997/ 사진가 김보섭
조개를 잡으면 세척하고 다듬는 노동이 다시 기다린다. 주민들은 고무 골무를 만들어 손가락과 손바닥에 끼워 사용했다. 1997/ 사진가 김보섭

사라지는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그는 흑백 필름으로 송도를 찍기 시작했다. 김보섭의 옛 송도 갯벌 풍경 사진전 ‘송도, 사라진 갯벌과 먼우금 사람들’이 현재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인덱스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가는 작업 노트에 이렇게 썼다.

조개를 캐던 송도 시듬물 주민들, 1996/ 사진가 김보섭
갯벌을 매립하기 위해 쌓아놓은 돌위를 지나 더 먼 갯벌로 가는 어민들, 1997/ 사진가 김보섭

“나는 안개 낀 날 미루나무가 있는 동막 어촌계의 당당한 모습과 농촌의 사라져가는 모습을 기록했다. 목조로 된 송도어촌계가 있었고 소들이 달구지를 끌고 다녔다. 고잔 어촌계에서는 맛(조개 종류)을 잡기 위해 펄을 깊이 팠다. 겨울인데도 온몸에 땀이 날 정도로 많이 팠다. 신도시 공사가 시작되자 바다는 흙과 바위를 빨아들이며 땅으로 메워지고 있었다. 어촌계 사람들은 메워지는 바닷길의 흙과 바위를 힘들게 넘고 넘어 조금 더 먼 바다로 나가 조개를 잡았다. 그 광경을 그대로 필름에 기록했다.”

보상 협의를 위해 모인 어촌계 주민들, 1997/ 사진가 김보섭

물이 빠지는 썰물이 되면 여자들은 갯벌에서 조개를 캐는데 대략 5시간 정도 일하면 시멘트 큰 포대(40㎏)로 하나 가득 모시조개나 대합, 상합 같은 조개를 캤고, 남자들은 건간망(그물 통발)을 만들어 썰물로 물이 빠지면 숭어나 우럭 등을 잡았다.

전시 사진들은 썰물로 물이 빠진 갯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매립 공사를 위해 쌓아놓은 바위를 내려가 바다로 가는 모습, 맛조개를 찾기 위해 갯벌을 파거나 보상을 받기 위해 모인 주민들과 이 지역 어촌계 풍경 등이다. 사진들은 송도의 1996년부터 최근 모습까지 있다.

동막 어촌계, 1997/ 사진가 김보섭
송도 동막마을 미루나무., 1997 / 사진가 김보섭

“갯벌이 사라졌다고 무조건 나쁘게 보지 않는다”는 사진가는 신도시가 생기고 새로운 환경에 새로운 사람들이 모여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기록할 뿐이라고 했다. 사진은 그렇게 사라지는 것을 기록하고 상실을 보관할 뿐이다.

갯벌을 메꾸고 생긴 서울 여의도 17배의 땅위에 세운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국제도시, 2016/ 사진가 김보섭

송도국제도시가 보이는 인천 연수동에 지금도 사는 김보섭은 1995년부터 인천 차이나타운과 자유공원, 양키시장, 신포동, 연평도 등을 기록하며 10권이 넘는 사진집과 20여 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23일까지 하는 서울 전시는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27일부터 4월 2일까지 열린다.

인천 차이나타운에 살던 마당씨 할머니와 외증손녀: 마당씨 할머니는 전통적인 중국여성의 모습을 간직한 화교 1세대로 전족을 했다. 생신날 촬영했다.1988/ 사진가 김보섭

사진/ 눈빛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