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한 장 30. 이현권 사진가의 ‘복원, 기억의 지층 위에서’ 사진전
환자복 바지를 입은 한 남자가 얼굴을 파묻고 쭈그려 앉아 있다. 옆에 쌓인 식판들로 봐서 병원 내 식당처럼 보인다. 이곳은 2004년 서울 중곡동 국립서울병원 구내식당. 환자이던 이 남자는 배식 30, 40분 전부터 미리 와서 기다린다고 했다.
흔히 ‘중곡동 정신병원’으로 불리던 이곳은 1962년 처음 세워져 오랫동안 정신건강의학과 환자들이 치료를 받는 병원으로 알려졌다. 병원 건물은 허물고 다시 세워서 2016년에 국립정신건강센터로 재개원했다. 어둡던 예전 병원 모습은 사라지고 지금은 스타벅스와 올리브영도 있다는 병원 지하 1층엔 전시장도 있다. 이 전시장에서는 요즘 20여 년 전 병원 모습 사진들이 전시 중이다.
사진에는 환자들이 고개를 푹 숙이거나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있고, 건물 밖에서도 서로 떨어져 생각에 잠긴 환자들이 보인다. 사진들은 사진가 이현권(54)이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전공의사로 일하며 찍어둔 사진들이다. 조현병이나 알코올 장애, 우울증 등을 상담하거나 치료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26년째 일하는 이씨는 한편으로 파노라마 카메라로 한강 사진을 찍으며 11회 이상 개인전도 열고 있는 사진작가다.
사진가는 의대생 시절 수술방에서 쓰던 중고 펜탁스 필름 카메라를 빌려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그의 사진엔 카우치에 누워 환자들과 상담하며 어두운 내면의 그림자를 찾는 모습들이 반영되어 있다. 환자들의 마음에 묻어둔 고통과 갈등의 원인을 찾기 위한 길처럼 깊고 모호한 풍경들을 보여준다. 이전에 한강 연작의 하나로 이현권이 발표한 ‘이분의 일’은 하늘과 강, 하늘과 땅의 구분이 모호한 안개 속 풍경이다. ‘일 년’이라는 사진들은 매일 출근하는 병원으로 가는 국도변에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잡초들을 푸른 싹이 돋거나 메마르고, 눈이 덮인 풍경을 2년간 찍어서 발표했다.
이번에 전시된 사진들에도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을 창밖에서 바라보거나 밖에서 안을 바라보는 모습은 얽혀 있는 실타래처럼 복잡한 심리적인 모습이 연상됐다. 높은 철제 사다리가 기댄 벽 아래쪽엔 병원 건물의 벗겨진 칠은 무의식에 남아 있는 오래된 상처나 나쁜 기억들이 연상되었다. 사진가는 당시에 섬처럼 고립된 병원에서 단순하고 반복적으로 사는 환자들의 모습에서 인간의 모습을 느꼈다고 했다.
전공의 시절에 찍어둔 많은 필름은 한동안 전문의 시험 준비를 하면서 몇 달간 못 갔는데, 필름 절반이 분실되고 당시에 인화해 둔 사진과 남은 필름들로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고 한다. 그래서 전시 제목인 ‘복원, 기억의 지층 위에서’도 사진의 복원을 의미하면서도 환자들을 대하는 치료적 의미도 가진다고 했다. 전시는 3월 말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