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을 앞둔 국회 본회의장, 한 여당 의원의 스마트폰 화면에는 보좌관의 은밀한(?) 메시지가 떠 있다. “의원님, 설날 명절 선물이 슬슬 들어오고 있어서 위 텔레그램 방에서 XXX 비서관과 함께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매년 설, 추석 명절이면 국회 의원회관 택배 보관소에는 과일부터 각종 지역 특산물까지, 마치 거대한 택배 터미널을 방불케 하고 있다. 의원실로 답지하는 선물 목록은 여의도에 명절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신호탄인 것이다.
흔히 ‘김영란법’이라 불리는 청탁금지법은 공직자에게 엄격한 잣대를 대지만, 명절에는 숨통을 틔워준다. 원칙적으로 5만원 이하만 가능하지만, 설과 추석 명절 기간(명절 전 24일부터 후 5일까지)에는 농수산물 및 농수산 가공품에 한해 한도가 15만원에서 30만원으로 두 배 상향된다.
이 시기 국회 의원회관 1층 로비는 마치 거대한 택배 터미널을 방불케 한다. 사과와 배 상자, 한과 세트, 건어물 등이 산더미처럼 쌓이고, 보좌진들은 이를 분류해 의원실로 옮기느라 분주하다. 과거에는 고가의 한우 세트가 흔했지만, 법 시행 이후에는 실속형 농산물이나 5만원대 이하의 선물이 주를 이루는 변화가 생겼다.
하지만 이 풍경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복합적이다. 매년 명절마다 국회의원들은 약 425만원의 ‘명절 휴가비(떡값)’를 별도로 지급받기 때문이다. 서민들은 물가 걱정에 사과 한 알 사기 무서운 명절, 산더미처럼 쌓인 선물과 거액의 상여금은 국회가 내려놓아야 할 ‘기득권의 상징’으로 비치기도 한다. 지난해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은 “송구한 마음”이라며 전액 기부하기도 했다.
선물은 마음을 전하는 수단이지만, 여의도에서의 선물은 때로 이해관계의 확인이나 영향력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법의 테두리를 아슬아슬하게 지키며 ‘슬슬 들어오는 선물’보다, 민생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술술 풀리는 정책’ 보고가 더 많아지기를 국민은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사진은 거창한 장면을 담지 않는다. 연단도 없고, 플래시도 없다. 대신 정치의 민낯을 보여준다. 제도와 인간 사이, 공적 책무와 사적 관계 사이에서 매년 반복되는 아주 사소한 선택의 순간. 명절 선물 한 상자는 그렇게 국회의 윤리 감수성을 비추는 작은 거울이 된다.
설은 나눔의 계절이다. 동시에 국회에게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절이기도 하다. 법을 넘지 않는 선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눈높이를 넘지 않는 정치다. 스마트폰 화면 속 짧은 메시지는 묻고 있다. “이 정도면 괜찮은가”가 아니라, “이 모습이 과연 믿음을 주는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