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로비에서 환자들을 위한 힐링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이날 음악회에는 성악가 윤선영(음악감독), 송나라, 한승연, 최승주, 피아니스트 조은정이 참여했다. /박성원 기자

길을 지나다 “요즘 세상 참 팍팍하네...” 읊조리는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틀렸다. 누군가는 무보수로 본인의 재능을 발휘해 남들에게 행복과 위로를 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 세상은 따뜻하고 살만하다고 할 수 있다.

지난 17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어린이 병동에서 바이올린, 비올라, 피아노 등 세 가지 악기로 화음을 만들어내는 음악인들을 만났다. 이들은 소아암 등 아픔을 겪는 어린이 환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본인의 악기를 들고 대전에서 서울까지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 30여 분간 캐럴과 어린이 맞춤 음악을 통해 환자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했다.

17일 오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어린이병동에서 음악회가 열린 가운데 한 어머니가 아픈 아이를 등에 업은 채 음악을 감상하고 있다. 해당 음악회는 어린이 환자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전하기 위해 열렸다. /박성원 기자

휠체어를 탄 채 링거를 꽂고 빡빡머리를 한 환아는 연주를 듣고 해맑게 웃으며 박수를 치기도 했다.

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병 진단을 받은 환아의 어머니는 “오랜 투병 생활로 계절의 변화도 느끼지 못한 채 지냈는데, 캐럴 연주를 들으니 어느덧 겨울이 왔음을 느꼈다”며 “캐럴이 힘든 마음을 치유한 것처럼, 모든 아이들의 병도 치유되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17일 오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어린이병동에서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이날 음악회에는 이지현(바이올린), 김민경(비올라), 박진희(피아노)가 참여했다. /박성원 기자

같은 날 안암병원 로비에서도 몸과 마음이 지친 환자들에게 희망과 치유의 메시지를 전하는 공연이 진행됐다. 여성 성악가들의 노래와 피아니스트의 피아노 선율의 하모니는 마치 오페라하우스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줬다.

17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로비에서 환자들을 위한 힐링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박성원 기자

공연을 펼친 이들은 이화여대·서울대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국제 콩쿠르에서 수상하는 등 고스펙을 지닌 음악인이지만, 보수를 받지 않고 음악회를 진행했다.

음악 감독을 맡은 윤선영 씨는 “1년에 2~3번 무보수 봉사를 한다. 돈을 받지 않고 재능 기부를 하면 지인들이 ‘왜 하냐?’고 묻는데, 사실 에너지를 얻고 간다”며 “관객들이 노래를 들으며 춤을 추거나 눈물을 흘리며 위로받았다고 말해 주는데 그게 엄청난 힘이 된다. 그래서 돈을 받지 않아도 음악이 필요한 자리에 직접 찾아간다”고 말했다.

17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로비에서 환자들을 위한 힐링 음악회. 감동을 받았다는 관람객들이 합창단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박성원 기자

실제로 이날 공연을 마친 뒤 관객들이 공연단을 찾아가 “오늘 출산을 하고 이 공연을 보게 됐는데 너무 감동적이었다”며 함께 기념사진을 찍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지난 24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병동에서 연주자와 성악가들이 환자들을 위해 공연을 펼치고 있다. /장경식 기자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지난 24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도 무보수로 공연하는 음악인들이 있었다. 누워 있는 환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을 주기 위해 공연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24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별관 호스피스 병동에서 음악회가 진행된 가운데 한 환자가 특별 공연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장경식 기자

조용했던 병동에 캐럴이 울려 퍼지자, 환자들에게 활력이 돋았을까. 한 환자가 갑자기 마이크를 요청하더니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의 손과 얼굴은 야위었지만, 목소리엔 여전히 힘이 있었다. 노래가 끝나자 병동은 박수 소리로 메워졌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별관 호스피스 병동에서 연주자와 성악가들이 환자들을 위해 공연을 펼치고 있다. /장경식 기자

17일과 24일 병원에서 각각 진행된 음악회는 사단법인 이노비와 해당 병원이 함께 주최했다. 이노비는 사회·문화·신체적으로 소외된 이웃에게 최고의 음악과 공연, 문화 프로그램을 제공해 위로와 행복을 전하는 비영리 단체다. 아티스트와 협업해 ‘병원 음악회’를 비롯한 문화 행사를 현재까지 2000회 넘게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