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지난 8월 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춘석 당시 법제사법위원장이 휴대전화로 주식 거래 앱 화면을 확인하는 장면이 보도돼 차명거래·이해충돌 의혹이 제기됐고, 이 의원은 “보좌관 휴대전화를 사용했을 뿐”이라고 해명한 뒤 민주당을 탈당하고 법사위원장 사임서를 제출했다. 10월 26일에는 최민희 과방위원장이 딸 결혼식 축의금 명단(이름·금액)이 적힌 텔레그램 메시지를 확인·전달하는 모습이 포착됐으며, 의원실은 “피감기관 등에서 온 축의금을 반환하도록 지시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 뒤 최 위원장이 사과했다. 12월 2일에는 문진석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와 김남국 디지털소통비서관의 텔레그램 대화가 공개되며 ‘인사 추천’ 논란으로 번졌고, 대통령실은 김 비서관을 엄중 경고한 뒤 사직서를 수리했다. / 더팩트·서울신문·뉴스핌 제공

사진기자들 사이에서 국회 출입은 ‘험지’로 통한다. 일정은 촘촘하고, 비좁은 자리엔 수십 명이 몰린다. 악수·발언·표결처럼 ‘정답이 정해진 장면’이 반복되는 날도 많다. 들이는 품에 비해 결과가 돋보이지 않는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올해 국회에선 국회의원의 휴대전화 화면이 카메라에 잇따라 포착되며 논란을 키운 사진이 연이어 보도됐다. 국회 안 공직자의 스마트폰 화면을 사진으로 포착해 보도하는 행위, 이른바 ‘폰-스크린 저널리즘’이 국회 사진 취재의 한 장르로 굳어졌다.

차명 거래·축의금·인사 추천…휴대폰 화면이 만든 파장

국회에서 포착된 세 장면이 흐름을 굳혔다.

지난 8월 4일,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던 더불어민주당 이춘석 의원이 본회의 도중 휴대전화로 주식 거래 화면을 확인하는 모습이 더팩트 단독 보도로 공개됐다. 차명 거래·이해충돌 의혹이 제기됐다. 이 의원은 “보좌관 휴대전화를 사용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후 민주당 탈당과 법사위원장 사임서를 제출했다.

10월 26일에는 최민희 과방위원장이 본회의장에서 딸 결혼식 축의금 명단과 금액이 적힌 텔레그램 메시지를 확인·전달하는 장면이 서울신문 단독 보도로 나왔다. 의원실은 “피감기관 등에서 온 축의금을 반환하도록 지시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논란이 커지자 최 위원장은 사과했다.

12월 2일에는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와 김남국 디지털소통비서관의 텔레그램 대화 사진이 뉴스핌 카메라에 단독으로 포착되며 ‘인사 추천’ 논란으로 번졌다. 대통령실은 해당 비서관을 엄중 경고한 뒤 사직서를 수리했다.

위 사례는 공통적으로 휴대폰 화면이 의혹의 ‘단서’가 되고 해명과 후속 조치로 이어지는 검증의 출발점이 됐다는 점을 보여준다. 해외에선 타인의 화면을 뒤에서 훔쳐보는 행위를 ‘숄더 서핑(Shoulder surfing)’이라 부르지만 국회발 사진을 단순한 훔쳐보기로만 규정하기는 어렵다.

사생활 침해 주장이 어려운 국회의 특수성

한국 사회는 초상권과 사생활 침해에 민감하다. 공공성이 분명한 집회나 공적 행사를 제외하면, 당사자 동의 없는 촬영과 보도는 법적 분쟁으로 번지기 쉽다.

아이러니하게도 국회는 공인의 초상권과 사생활을 주장하기 가장 어려운 공간으로 꼽힌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 영역이고, 그 안의 주체는 선거로 선출된 국회의원이라는 공인이다. 발언과 표결뿐 아니라 자리에서의 태도와 행동도 정치 뉴스가 된다. 때로는 정책과 권력 지형을 흔들기도 한다.

본회의장이나 상임위에서 포착된 휴대폰 화면을 두고 ‘사생활 침해’라고 주장하기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사적 대화나 개인 일정이 함께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는 분명 존재한다. 다만 국회라는 공간에서 공인이 이해관계를 확인하고, 누구와 메시지를 주고받는지는 공적 판단의 대상이 된다. 보도 이후 의혹 제기와 해명, 후속 조치로 이어졌던 과정은 공직자 감시와 책임 정치의 순기능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에서 내려다보면 의원석이 한눈에 들어온다. 기자석과 가까운 뒷좌석은 100-400㎜ 망원렌즈로 휴대전화 문자 내용까지 식별될 만큼 시야가 열려 있다. 사진은 박덕흠 국민의힘 의원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30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경찰관 직무집행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을 하는 모습. / 뉴스1

열린 공간이 만드는 방심의 빈틈

국회는 300명의 국회의원과 보좌진, 정부 관계자, 정당 인사, 각종 이해관계자가 한 공간에 밀집해 오간다. 여러 현안이 동시에 벌어지는 곳이다.

특히 본회의장은 뒤쪽에 방청·취재 구역이 마련돼 있어 회의장을 비교적 넓게 내려다볼 수 있다. 시야가 열린 만큼 의원의 작은 동작과 표정, 책상 위 자료, 손에 쥔 휴대전화 화면까지 카메라 프레임에 들어온다.

회의장 안의 당사자들은 대체로 의장석을 바라본다. 뒤에 자리한 취재진을 계속 의식하기는 어렵다. 회의가 길어지고 메시지 확인이 잦아질수록 경계는 느슨해지기 쉽다. 방청석과 가까운 뒷줄일수록 망원렌즈 시야에 화면이 걸릴 가능성도 커진다.

카메라 기술이 끌어올린 문자 메시지의 선명함

필름 카메라 시절엔 어두운 실내에서 감도의 한계가 뚜렷했다. 초망원으로 당겨도 노이즈와 해상력 탓에 글자가 뭉개지기 일쑤였다. 휴대폰 화면 속 문자를 ‘식별 가능한 정보’로 남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지금은 다르다. 고감도에서의 노이즈 억제, 손떨림 보정, 고해상도 센서, 망원 렌즈 해상력, AF 성능이 결합하면서 먼 거리에서도 글자 윤곽이 남는다. 촬영 뒤 크롭(확대)과 샤프닝, 노이즈 제거 같은 기본 보정만으로도 가독성이 올라간다.

AI 기반 업스케일링 등 화질 개선 기술까지 더해지면, 육안으로는 흐릿했던 텍스트가 ‘판독 가능한 단서’가 되기도 한다. 의원들이 쓰는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자체가 고해상도화된 점도 영향을 준다. 텔레그램 같은 보안 메신저가 종단 간 암호화를 내세워도, 물리적으로 포착되는 순간 무용지물이다.

미학을 앞지르는 증거로서의 사진

저널리즘 사진은 보통 뉴스 가치와 미적 완성도의 균형으로 평가받는다. 한쪽이 과도하게 앞서면 좋은 사진으로 남기 어렵다는 통념도 있다.

그러나 국회 ‘폰-스크린’ 사진은 공식을 비켜선다. 구도나 빛의 미학보다, 화면 속 내용이 무엇인지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문자 메시지나 대화 내용이 권력의 관계, 이해관계의 접점, 부적절한 행동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면 사진은 이미지가 아닌 ‘증거’에 가까운 기록으로 작동한다. 다만 화면에 불필요한 개인정보가 과도하게 드러나지 않도록, 편집 판단과 보도 윤리는 더 엄격해야 한다는 지적도 따른다.

차별화를 꾀하는 기자 정신

‘폰-스크린’ 사진이 우연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는 시각도 있다. 더팩트 남윤호 기자는 이춘석 의원 화면 포착 취재와 관련해 “데스크가 본회의장에 2명을 투입해, 한 명은 기본 장면을 안정적으로 책임지고 다른 한 명은 혹시 모를 장면을 훑으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표결·대치·발언 같은 필수 장면을 놓치지 않는 운용이 필요하다. 동시에 회의장 곳곳의 미세한 변화를 끝까지 관찰하는 시도가 있어야 한다. 팀 단위로 역할을 분리하면, 우연을 확인할 수 있는 구간을 넓힐 수 있다.

권력에 가까울수록 커지는 방심의 누적

왜 하필 국회에서 이런 유형이 반복될까. 답의 일부는 당사자의 방심에 있다. 특히 권력과 가까운 집권 여당일수록 대통령실과 정부, 이해관계자와의 소통 빈도가 잦다. 휴대폰은 업무 도구로 더 자주 열리고, 이해관계 앞에서 공과 사의 경계가 흐려지기 쉽다. 작은 부주의가 누적되다 한 번의 노출로 폭발하는 구조다. 보도가 확산된 뒤에야 화면 각도나 메신저 사용 수칙 같은 처방이 거론되지만 수습은 쉽지 않다.

최고의 보호 필름은 윤리의식

본회의장에서 휴대전화 사용을 자제하고 보안 필름을 붙인다 해도 임시방편에 가깝다. 물리적 차단은 노출 가능성을 낮출 뿐, 공적 판단의 대상이 되는 행동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

언제든 기록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공직자 스스로 공적 기준을 엄격히 지키는 태도가 요구된다. 최민희 의원 ‘축의금’ 관련 사진을 촬영한 서울신문 홍윤기 기자는 “이해관계를 따질 겨를도 없이 기자로서 포착한 장면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공인에 대한 사진기자의 기록은 권력 감시의 한 방식으로 정당성을 가진다. 휴대폰 화면이 논란의 출발점이 되는 이유도, 그 화면이 공적 책임과 이해관계, 권한 행사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